'클레멘타인 아빠'로 하루

2014. 5. 21. 08:19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넓고 넓은 바닷가에 오막살이 집 한 채

고기 잡는 아버지와 철 모르는 딸 있네.

내 사랑아, 내 사랑아 나의 사랑 클레멘타인

늙은 아비 혼자 두고 영영 어디 갔느냐"

 

다들 기억할 게다, 미국 민요 '클레멘타인' 가사.

그리고 그게 좀 황당한 번안이라는 것도 왠만큼 알려져 있다.

원곡의 가사는 이렇다.

 

In a cavern, in a canyon Excavating for a mine

Dwelt a miner forty-niner And his daughter, Clementine

Oh, my darling, oh, my darling Oh, my darling Clementine

You are lost and gone forever Dreadful sorry, Clementine

 

포티나이너(miner forty)란, 잘 알다시피 미국 금광 경기(gold rush)가 한창이던 1849년, 캘라포니아에 몰려든 사람은 일컫는다. 협곡의 동굴에서 땅파는 광부(Dwelt a miner) 아빠와 살던 클레멘타인이 어느날 사라졌다는 사연. 그러니 번안곡의 '바닷가' '어부' 따위는 몹시 생뚱맞다 할 것이다.  

 

어인 뜬금없는 얘기냐고? 어제와 오늘, 내가 'Dwelt a miner' 비슷한 처지였음을 하소연하려는 참이다. 다만 생뚱맞은 번안곡처럼, 광산이 아닌 논에서 땅을 팠다. 좀 더 자세히 말하자면 안밤실 어귀 논배미 사이를 가로지르는 물꼬랑(배수로). 지난 이틀 동안 거기 쌓인 퇴적물을 퍼내는 준설작업을 벌였던 것이다. 물고랑은 애초 한 두 해만 지나도 뻘과 각종 유기물이 쌓여 바닥이 높아지게 마련이다. 그리 되면 물이 잘 빠져나가지 않아 고여 썩고, 수확기에 논이 질척해지는 원인이 된다. 때문에 귀찮고, 손이 많이 가도 준설을 해서 물 흐름을 잡아놔야 하는 것이다.

 

 

 

먼저 물고랑에 수북이 자란 억센 풀을 예초기로 베어낸다. 우거진 수풀이 서 너 시간 만에 삭발한 듯 민둥민둥해졌다.

 

이제 퇴적물을 파낼 차례.  물고랑은 폭이 좀 넓기도 하고, 길이가 족히 2백 미터는 된다. 이런 경우 포그레인을 불러 작업하기도 한다. 기력이 달리는 어르신이나 다른 사정이 있는 경우가 그렇다. 하지만 다른 사정이 있는 것도 아니고, 시간을 다투는 것도 아니니 힘 닿는 대로 해나가기로 했다. 손으로 해도 되는 일에 석유를 태우는 일도 께름칙하고, 비용 부담도 큰 탓이다.

 

이 작업엔 네 발 쇠스랑이 안성맞춤이다. 바닥을 내리찍어 끌어올리면 덩이진 풀뿌리가 딸려 올라온다. 워낙 뿌리를 깊이 박은 놈들은 용을 써야 겨우 딸려나온다. 쇠스랑질 너댓 번에 숨이 가빠진다. 한 동안 숨을 고르다가 다시 찍어 끌어올리기를 거듭한다. 이 일만도 하루가 넘게 걸렸다. 논두렁에 끌어올려진 거므튀튀한 퇴적물에 이 작업의 고단함이 그대로 묻어난다. 그래도 물길이 잡히고, 고여 있던 물이 싹 빠져나가니 체증이 뚫린 듯 시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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