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파랑 고추랑

2014. 5. 15. 11:03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어제와 오늘, 농사 동선이 좀 복잡하다. 이른 아침엔 양파밭 풀매기, 아침나절엔 고추밭 말뚝 박기, 오후엔 논두렁 손보고 물길 만들기. 정신 없이 하루가 간다.

모내기를 앞두고 논 만드느라 겨를이 없는 판에 밭농사라니 어째 껄쩍지근하다. 그래도 온새미로 공동체에서 함께 하기로 했으니 어쩔 도리가 없다.

 

새벽 5시가 조금 넘어 너멍굴 양파밭으로 트럭을 몬다. 아직은 새벽공기가 쌀쌀하다. 풀은 잔뜩 이슬을 머금어 척척하고 찬 느낌이 그닥 좋지가 않다. 양파는 수확을 앞두고 막바지 알뿌리를 키우고 있다. 이 놈들은 캘 때가 다가오면 스스로 줄기를 넘어뜨리는 성질이 있다. 지금은 꼿꼿이 서 있는 놈들과 옆으로 누은 놈이 반반이다. 6월초에 캐낸다. 한 이틀을 햇볕에 말리고, 가위로 줄기를 잘라서 망자루에 담는 고단한 작업이 이어진다. 

 

 

양파밭 옆에서는 얼마 전 옮겨 심은 고추모가 자라고 있다. '자연농법'으로 해보자고 비닐멀칭을 하지 않았다. 수북이 자란 풀을 베어내고 그 사이사이에 모를 심었다. 그새 풀이 또 자라서 고추모 찾기가 마치 '숨은그림찾기' 같다. 옮겨심은 뒤 한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아 심한 몸살을 앓은 모양이다. 잎사귀가 말라 비틀어져 거의 줄기만 남은 놈들이 꽤 되고, 일부는 아예 말라 죽어버려 다시 옮겨 심기도 했다. 저렇게 새 땅에 부대끼면서 뿌리를 내리면 키도 크고 튼실해지겠지. 아무튼 날이면 날마다 솟아오를 저 풀들과 전쟁을 치를 생각을 하면 벌써부터 아득해진다.

 

침을 먹고 나서는 분토골 주란 씨네 밭으로 트럭을 몬다. 1천평 남짓 펼쳐진 그 밭에는 자연농업으로 키우는 감자와 양파, 완두콩, 옥수수 같은 작물이 들어서 있다. 나는 이 곳에 말뚝을 박는 품앗이를 하러 왔다. 너멍굴 고추보다 조금 일찍 옮겨 심은 이 곳 고추밭에 지주대를 세우는 일이다.

 

고추대는 사람 키만큼 쑥쑥 자라는데, 그대로 두면 바람에 꺾이고 만다. 양옆으로 줄을 띠어 지지해주어야 한다. 그러자면 줄을 고정할 지주대를 고추모 서너포기마다 하나씩 세우는데, 요즘은 보통 알미늄 재질을 사서 쓴다. 옛날엔 대나무 따위 나무말뚝이나 철재 파이프를 썼는데 많이 경량화된 셈이다. 

 

문제는 이 지주대를 박는 일이 여간 힘들지가 않다는 거다. 흔히 망치로 내리치는데 키가 작은 사람은 머리 위에서 망치를 휘둘러야 하므로 힘겹기도 하거니와 지주대 머리를 정확히 맞추기도 쉽지 않다. 그래서 더러는 '항타기'라는 기구를 만들어 쓴다.

 

얼마 전 용호 씨네 용접기를 빌려 얼기설기 만든 항타기를 드디어 쓰게 된 것이다. 이 항타기라는 놈, 확실히 쓸모가 있다. 지주대 머리를 정확히 겨냥하느라 신경 쓸 필요도 없고, 두어 번 내리치면 그만이니 작업속도가 훨씬 빠르다. 한나절은 족히 걸릴 일이 한 시간 조금 넘게 걸렸다. 그래도 항타기 무게가 있어선지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