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5. 12. 23:00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나는 농사꾼이다!"
벼농사가 3년 째로 접어드니 농사의 맥을 짚어간다는 느낌이 든다. "'큰 사달'이 농사를 밀고 간다"고도 얘기했지만, 지난 이태 쌓인 경험이 만만치 않은 것이겠지.
지난해까지만 해도 못자리를 둘러보는 건 말 그대로 자전거 안장에 앉은 채로 '휘~ 둘러' 보는 게 고작이었다. 그러니 부직포 아래에서 볍씨가 말라 죽어가는 것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던 거라. 하지만 올해는 다르다. 일단 자전거에서 내리는 건 당연하고, 부직포를 일일이 들춰가며 못자리 일곱 이랑을 살핀다. 모의 생육상태가 어떤지 눈으로 직접 확인하다. 일주일 전에는 푸르게 올라온 여느 모와 달리 희끗한 여린 모에 화들짝 놀라 물높이를 낮췄다. 그 이틀 뒤에도 상태가 그닥 바뀌지 않아 결국은 '사부' 광수 씨한테 전화를 했더니만
"물이 많아서가 아니라 햇빛을 못 봐서 그려~ 걱정할 건 아니고, 당분간은 물을 충분히 대줘~!"
찜찜한 구석이 없지 않지만 나로서는 어쩔 수가 없다. 시키는 대로 했고, 모는 날이 갈수록 푸른 빛을 더하며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다음으로 논두렁. 논두렁은 그저 농사꾼이 걸어다니는 길이 아니다. 무엇보다 물이 새 나가지 않도록 가두는 '보'다. 더욱이 제초제를 쓰지 않고 풀을 잡는 유기농에서 물높이를 유지하는 건 몹시 중요하다. 그 가운데서도 피가 문젠데, 호기성 식물인 피는 물을 높이 대야 발아를 막을 수 있다. 그러자면 논두렁을 잘 정비해야 한다. 왠만큼 높아야 하고, 무너지거나 구멍이 나지 않을 만큼 탄탄해야 한다. 그런데 지난해까지는 미리 논두렁을 손볼 생각에 이르지도 못했다. 모내기를 한 뒤 논두렁에 문제가 생기면 난처해진다. 논두렁을 보강할 '흙'을 긁어모으기 어려운 탓이다. 그렇게 이태의 경험이 쌓이면서 논두렁은 모내기 전에 손봐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지금 그러고 있다.
셋째 물잡기. 재실 강 씨는 오늘 '아시로' 논을 갈았다. 애벌 논갈이다. 어제 비가 흠씬 내려 트랙터 로터리 작업을 하기 편해졌기 때문이다. 강 씨는 늘 강조한다. "샴골처럼 늘 질척한 논은 물을 철렁철렁 잡아놔야 되아요~ 그래야 트랙터 바퀴가 팍팍 치고 나갈 수 있응게!"
지난해까지는 그 얘길 듣고도 물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 '반응속도'가 너무 늦었던 탓이다.
올해는 벌써부터 움직이고 있다. 농수로 보의 수문이 문제다. 보를 막을 나무판자를 준비해야 하는데, 지난해까지는 그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으로 대충 얼버무렸더랬다. 그러다 보니 물이 틈새로 새어나가 제대로 잡히지 않았던 것. 올해는 작심하고 판자를 준비했다. 나무 받침대(파레트) 하나를 해체한 뒤 , 톱질하고 못질해서 수문 너비에 맞는 판자를 만들었다. 그걸 보에 끼우니 안성맞춤, 물이 잡힌다. 얼마 뒤 물구멍을 빠져나온 물이 논으로 콸콸 쏟아진다. "나는 목수다!"
심지어 나는 용접공이다. 얼마 전 고추모 옮겨 심었던 얘기는 했고. 그 놈이 자라 키가 크면 바람을 타게 되는데 그냥 두면 꺾어지고 만다. 그래서 지주대를 세우고 끈을 띠어 지탱해준다. 문제는 지주대를 밭에 꽂는 일. 고추대는 보통 사람 키높이로 자란다. 그러니 지주대도 그에 버금 가는 높이가 되어야 한다. 그런데 그걸 망치로 내리쳐서 꽂는다? 힘들기도 하고, 왼손을 때리거나, 빗나가 상처를 입기 십상이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 '항타기'라는 기구를 쓰면 좋다는 걸 알았다. 지난 겨울 토종 '칠성초' 씨앗을 구하러 곡성에 갔다가 친구한테 들은 얘기다. 그 친구가 내친 김에 항타기 몸체를 건네주며 "손잡이는 용접해서 달면 된다"고 했더랬다. 일단 받아들고 왔는데, 이제 며칠 뒤면 고추밭에 지주대를 박아야 한다. 당연히 항타기 손잡이를 달아야 겠지. 손잡이를 달려면 철근을 'ㄷ'자로 휘어 양옆에 두 개를 용접해야 한다.
우리집에는 용접기가 없다. 그거 하나 용접하자고 용접기를 살 수도 없고. 생각 끝에 용접기가 있는 화산 용호 씨네 신세를 지기로 했다. 귀농한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용호 씨는 요즘 한창 집을 손질하느라 바쁘다. 용접이 필요한 작업이 많은 모양이다. 하지만 용호 씨는 용접에는 완전초보라 용접부위가 '처참한' 모양새다. 나로 말하자면, 비록 25년 전 얘기지만 버젓한 용접공 출신이다. 감각만 돌아오면 항타기 정도 용접 쯤은 식은 죽 먹기. 그런데 말처럼 쉽지가 않다. 철근을 'ㄷ'자로 휠 수 있는 도구가 없다. 게다가 용접기 상태가 신통치가 않고, 그 감각이라는 것이 쉽게 돌아오지 않는다. 서 너 시간을 씨름한 끝에 거칠고, 우스꽝스런 모양의 항타기가 완성됐다.
그래도 미리 예상하면서 일을 해나간다는 것, 이거 장족의 발전이다. 그런 진전된 모습에 스스로 뿌듯해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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