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랑 치고... 가재는 없지만

2014. 5. 25. 16:23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또 하나 도랑을 파냈다. 이번에는 샘골, 오이처럼 길쭉한 논에서다. 조금 전 일을 끝냈다. 어제 아침부터 시작했으니 하루 반 걸린 셈인가?

이 논은 농수로에서 빠져나온 물이 흐르는 좁은 도랑을 끼고 있는데 두 해 넘게 파내지 않아 메워졌다. 이 때문에 물창이 나 가을까지 수렁 상태를 유지하는 바람에 두 해나 수확을 포기했던 논이다. 그 논이 올해부터 나한테 넘어온 것. 사실, 이 논을 지을 생각이 전혀 없었지만 기계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이 수렁논이 포함된 세 배미를 맡은 것이다. 아예 경작을 포기하면 모를까, 어차피 모를 낼 거라면 바닥을 파내야 했다. 길이가 족히 5백 미터는 돼 보이는데 까마득하다. 

 

 

그래도 하기로 마음 먹었으니 시작. 우선 도랑에 깊게 뿌리를 내린 풀을 뽑아내야 하는데, 이 놈들이 키워올린 줄기가 만만치 않다. 그 가운데서도 고마리의 위세가 대단하다. 뿌리를 파내기 전에 줄기부터 쳐내야 한다. 낫으로? 예전엔 그랬다지만 어느 세월에! 그럼 제초제를 확? 말도 안 되고... 그래서 휘발유로 돌리는 예초기가  대안이다. 나 또한 낫질은 엄두가 안 난다. 그래, 어제 아침부터 예초기로 도랑에 수북하게 올라온 풀 줄기를 쳐 냈다. 두 어 시간 걸렸다. 11시가 임박해 작업을 중단하고 <온새미로> 먹거리 장터에 물건(현미, 쌀겨, 책)을 갔다 줬다. 

 

 

오후에는 쇠스랑으로 뿌리와 얽힌 퇴적물 파내기. 역시 너댓 번 쇠승랑 질에 긴 휴식... 한 80% 정도 파냈는데 시간이... 5시를 지나고 있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 촉구집회 시간이 임박했다. 서둘러 일을 끝내 집으로 돌아와서는 서둘러 미소시장으로.

 

 

 

오늘 아침, 일찍부터 도랑 준설작업 계속. 마저 바닥을 파내니 도랑이 뻥 뚫려 물길이 되살아  났다. 속이 다 시원하다. 열두발 쇠스랑으로 도랑 바닥을 세밀하게 긁어내고 마무리. 확실히 물 흐름이 잡혔다. 가을이면 물창이 나 수확도 제대로 못 하는 모습을 이태 연속으로 봐온 논이다. 이 정도면 됐지 싶은데, 또 모르지...

 

옛말에 '도랑치고 가재 잡고'란 말이 있는데, 벼농사 짓는 도랑이라 가재가 살기엔 물이 흐리다. 대신 쇠스랑 질 몇 번이면 영락없이 드렁허리가 들려나와 허둥지둥 도망치는 꼴이라니... 이 곳에서는 흔히 '음지'라 부르는데 장어를 빼닮았다. 내 어릴 적만 해도 숱하게 봤던 놈인데, 화학농법이 도입되면서 보기가 힘든 어종이 됐다고 한다. 오염된 논에서는 살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이 놈들이 우글거린다는 것은 그래도 이 논이 깨끗하다는 걸 보여주는 것이라 한편으론 반갑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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