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세월을 어찌 건널까

2014. 6. 10. 22:22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벼농사가 시작되기 전, 양파밭 풀매고 고추모 보살피면서 이런저런 강의 준비로 정신없을 때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몹시 바쁠 때였고 공중파 TV, 종이신문도 끊고 사는지라 처음엔 사태의 윤곽조차 알지 못했다. 이틀 뒤에야 사태를 가늠할 수 있었고, 줄곧 무거운 납덩이를 가슴에 얹고 지낸다. 오늘로 딱 한 달을 넘어섰다.

 

그 새 볍씨는 한 뼘 크기로 자랐고, 고추모는 비닐하우스에서 본밭으로 자리를 옮겼고, 양파는 알뿌리를 키워 수확을 앞두고 있다. 뭇 생명은 이렇듯 분주하건만 세월호의 시간은 그대로 멈춰 있다. 3백이 넘는다는 실종자는 지금껏 아무도 살아오지 못했다. 채 꿈을 피우지도 못한 아이들이 겪었을 절대공포와 극한절망이 무시로 떠올라 먹먹해진다. 못자리를 둘러보다가 물에 잠긴 여린 볍씨에 눈길이 닿는 순간 저도 모르게 진저리를 쳤다. 온 세상이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태의 진실이 하나 둘 드러날수록 슬픔과 안타까움은 자본과 권력을 향한 노여움으로 바뀌고 있다.

 

이곳 완주라고 다르지 않다. 참사가 나고 일주일 남짓 지났을 때다. 낮에는 광수 씨네 볍씨 담그는 일 도와주고, 저녁 시간엔 귀농귀촌 인문학을 주제로 강의를 했다. 강의 시작 전에 전화가 울렸다. 완주문화원에서 일하는 상호 씨가 막걸리나 한 잔 하잔다. 강의를 마치자마자 읍내 식당으로 내달렸다. ‘막걸리 팀으로 엮인 동갑내기 셋이 모여 있다.

 

 

황망하고, 치가 떨리는 참극이 빚어졌는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 우리라도 쌈짓돈 추렴해서 분향소부터 차리자는 얘기였다. 여부가 있나! 실무는 상호 씨가 맡기로 했다. 그 사흘 뒤엔가 국민체육센터에 분향소가 들어섰다. 일을 추진하면서 군 농민회, 여성단체협의회의, 문화원 세 단체가 뜻을 모았다고 한다.

얼마 전에는 녹색모임에서 뭔가 행동으로 옮기자고 뜻을 모았다는 얘기를 주란 씨한테 전해 들었다. <녹색평론> 독자면서 생태 가치를 공유하는 세 식구, 여섯 명이 꾸리는 모임이다. ‘세월호 진상규명촉구 완주군민대회를 열기로 하고, 틈틈이 만나 준비하면서 집회신고도 마친 모양이다. 바로 내일이다. 오후 2, 우리 <온새미로> 공동체가 토요일마다 노점을 여는 읍내 미소시장 광장에서 열린다.

 

이름 번듯한 시민사회단체가 조직한집회가 아니니 뭔가 엉성하고, 중구난방이기 쉬울 것이다. 그러나 거기엔 풀뿌리연대, 자치, 지역공동체 같은 미래가치가 응축돼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안이 사안이라 착잡하면서도 처음 참석하는 시골 정치집회가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함께하는 품 20140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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