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농활대'

2014. 6. 10. 22:19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모 농사가 반 농사라고 했다. 벼농사를 지어 나락을 거두기까지는 대략 여섯 달 쯤 걸린다. 이 가운데 모를 가꾸는 기간은 한 달 남짓. 전체의 1/6밖에 안 되는 짧은 시간이지만 중요도로 따지면 절반이나 된다는 얘기다. 그 만큼 깍듯하게 정성을 기울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모 농사는 볍씨 담그기에서 시작해 모내기로 끝난다. 크게 볍씨 담그기와 넣기, 못자리 설치와 관리로 이루어진다. 염수선(鹽水選)-열탕소독-냉수침종으로 이어지는 볍씨 담그기에 대해서는 지난 번(<함께하는 품> 6)에 설명한 바 있는데,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세밀한 작업이다.

 

이에 견줘 볍씨 넣기(파종)와 못자리 설치는 고되고 일손이 많이 든다. 볍씨에서 촉(뿌리와 싹)이 트면 파종을 하게 된다. 기계로 모를 내기 전에는 못자리 바닥에 곧장 볍씨를 뿌렸지만 지금은 플라스틱 모판에 넣는다. 보통은 통짜모판에 손으로 뿌리거나 지그를 대고 줄뿌림 한다.

 

그런데 유기농에서는 컨베이어 시스템으로 포트모판에 볍씨를 넣는 파종기를 쓰는 게 보통이다. 포트모판은 4백여 개의 포트(볍씨 방)로 짜여 있고, 포트마다 상토를 깔고 볍씨 3~4알을 넣는다. 그러면 뿌리가 실한 튼튼한 모로 자란다. 농약 없이 병충해를 견디려면 모가 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작업은 컨베이어 시스템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 3~5명이 짝을 이루는 고된 단순반복 노동이다.

 

볍씨를 넣고 2~3일 지나면 못자리로 모판을 옮긴다. 그 얼마 전, 노조 상근자로 일하는 벗한테 전화가 왔다. 노동절부터 시작되는 연휴를 맞아 몇 명이 함께 놀러가도 되겠냐는 것. 이럴 땐 그저 어서 오라!”고 한다. 오랜 벗이 멀리서 찾아온다는 데 이보다 반가운 일이 또 있는가. 그런데 하필이면 못자리 하는 날하고 겹치는 거라. 그래, 오는 건 괜찮은데 사정이 그래서 걱정이라고 했더랬다. 그런데도 이들은 못자리 하루 전 이 곳을 찾았다. ‘남도여행에서 농활여행으로 취지를 바뀌었대나 어쨌다나. 일행 중에는 중남미여행 때 친구와 연이 닿은 아르헨티나 교민이면서 지금은 서울에 유학 중인 여학생도 끼어 있었다.

 

이 고장 농가레스토랑에서 체식 식단으로 점심을 들고, 20리 거리에 있는 잘 늙은 작은 절화암사에 들러 봄기운을 받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에는 전국에 소문이 난 전주 막걸리 집으로 향했다. 진안 사는 겸이네도 자리를 함께 했다. ‘상다리 휘는막걸리 상을 앞에 두고 모두들 쌓인 회포를 풀었다. 집으로 돌아와서도 얘기꽃은 자정이 넘도록 지지 않았다.

 

이른 아침, 쓰린 속을 부여잡고 혼자서 못자리로 나갔다. 일찍 나온 광수 씨, 창수 씨와 함께 못자리에 두둑을 짓고, 널빤지를 써서 표면을 매끈하게 밀었다. 그제야 아침이 준비됐다는 연락이 왔다. 식사를 마친 뒤 부스스한 몰골의 농활대를 이끌고 못자리로 돌아왔다. 이 동네 품앗이 일꾼까지 해서 모두 열 명이 넘는다. 이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모판을 나르는 일. 자그마치 12백 판, 45마지기(9천 평)에 심을 양이다.

 

누구는 트럭 짐칸에 켜켜이 쌓인 모판을 내려놓고, 누구는 진창에 푹푹 빠지며 들어 나르고, 누구는 못자리 바닥에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동네가 떠나도록 왁자했지만 일하는 품새는 서툴기 짝이 없다. 한나절이 넘어서야 모판을 모두 날랐다. 시장을 반찬 삼아, 막걸리를 곁들인 점심 보리밥이 꿀맛이다.

 

이렇게 한나절의 고된 노동을 마친 농활대는 재우쳐 장수로 출발했다. 그 곳 하늘소마을 재호 씨와 함께하는 또 다른 농활 프로그램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 만 하루, 짧은 시간 동안 참 많은 것을 나누고 그들은 떠났다. 이 쌀의 공동생산자로서, 농사 잘 지었는지 확인하러 가을걷이 때 꼭 다시 오겠노라는 다짐과 함께.

<함께하는 품 2014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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