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16. 16:29ㆍ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김매기가 다가 아니다. 양파에, 고추에, 들깨까지 사람 손길을 기다리는 놈들이 줄을 섰다.
양파는 모내기를 마치자마자 캐서 다듬고, 망자루에 담아 옮겨 쌓았다. 요즘도 길을 가다보면 빈 소막이나 야외 창고에 산더미처럼 쌓인 양파자루가 눈에 들어온다. 생산량이 너무 많아 팔리지를 않는 것이다. 시장가격이 곤두박질, 생산비를 밑돈다고 다들 울상이다. 우리 농사공동체 <온새미로>도 이 난리판을 한 몫 거든 꼴이 됐다.
그래도 어쩌겠나. 어차피 식구들이 다 먹을 수 없을 만큼 많이 거둬들였으니 처분해야지. 이런저런 경로를 통해 주문을 받았는데 일이 참 난감하게 됐다. 어찌 값을 매길지 고심이었다. 더욱이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은 유기농산물 아닌가. 하지만 ‘제값’을 받겠다고 나섰을 때 ‘시장’의 반응이 어떨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그럼에도 평소 받아오던 적정 수준의 값을 매겨 주문을 받기로 했다. ‘생태’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의 선의에 기대를 걸어보기로 한 것. 물론 시장상황과 관계없이 작년에도, 올해도, 내년에도 같은 가격대를 유지한다는 단서를 붙였다. 하지만 걱정했던 대로 시장의 반응은 냉정했다. 결국 전체 생산량의 1/3만이 팔려나갔다. 대부분은 ‘인정구매’에 가까웠고,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울 따름이었다. 남은 양파 또한 이런저런 경로로 적정가격에 처분하긴 했지만, 시장상황과 관계없이 농사꾼과 소비자가 상생하는 도농직거래가 널리 퍼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그런데 ‘양파 넘어 고추, 들깨’다. 논 김매기로 눈코 뜰 새 없는 몸뚱이를 다그쳐댄다. 고추밭은 한 보름 돌보지 않았더니만 잡초가 아예 수풀을 이뤘다. 김매기에 지친 몸을 이끌고 새벽 두어 시간, 고추밭 고랑에 예초기를 돌렸다. 기계진동이 심해 보기보단 엄청난 중노동이라 그예 몸살이 나고 말았다.
이 또한 폭폭헌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고랑에 난 풀이야 예초기로 쳐냈다지만 고추대 사이에 난 풀은 낫으로 베어낼 수밖에 없는데, 그 와중에도 논풀이 계속 자라니 그럴 여유가 없다. 몸져누울 엄두도 못 내고 몸 상태 봐가며 논풀을 매는데, “고추밭 풀매러 오세요” “양파 선별작업 합니다” “들깨모종 옮겨심어요” <온새미로> 공동작업 메시기가 꼬리를 문다. 그야말로 몸이 열이라도 모자랄 판 아닌가.
여유 있을 때는 이 농사공동체가 의미 있는 존재였는데, 사정이 이리 되고 보니 부담스럽기 짝이 없다. ‘내 코가 석 자’인지라 공동작업에 함께 하지 못하고 있다. 서로 사정이 달라 안 그래도 엇박자가 나던 터여서 어찌해야 좋을지 고민스럽다. 조만간 선들바람에 훌훌 날아갈 문제인지, ‘구조적 한계’에 이른 것인지. 아무튼 생태농사공동체 <온새미로>는 지금 큰 고비를 지나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어딜 가나 조직체라는 건 건사하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함께하는 품 20140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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