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7. 16. 16:27ㆍ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새벽 네 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눈을 떴다. 이젠 시골사람이 다 됐나보다고? 하긴 저녁 숟갈 놓기가 무섭게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 늦어도 새벽 다섯 시에는 몸을 일으키는 게 요즈음의 시골풍경이다. 해가 뜨면 날이 금방 더워지니 조금이라도 시원할 때 일하는 게 이롭기 때문이다. 심지어 날이 밝기도 전에 전등 불빛에 기대 일하는 경우도 더러 있다. 모자란 잠은 어차피 일을 못하는 한낮에 벌충하면 된다. 그게 한여름을 나는 지혜라 할 수 있다.
그러니 다섯 시 전에 일어난 게 무슨 대순가, 시골 살면 다들 ‘아침형 인간’이 되는 게 당연하지 않나... 생각하기 쉬운데 실은 그렇지가 않다. 수 십 년 몸에 익은 버릇이 몇 해만에 쉽게 바뀌겠는가. 나만 해도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도시의 ‘라이프스타일’이 여적 그대로다. 늦게까지 일하다 파김치가 되어 들어와서도 쉬 잠들기 어렵다. 하루를 갈무리해야 하고, 그날 하루 세상일이 어찌 돌아갔는지 살펴야 직성이 풀린다. 별난 일이 벌어진 날엔 SNS와 블로그 같은 온라인 미디어에 글도 올려야 한다. 그러다보면 자정을 훌쩍 넘기는 게 보통이다. 엔간해선 새벽에 일어나기가 쉽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인 일이냐고? 참 ‘폭폭헌’ 노릇이다. 안 그래도 논풀이 수북하게 올라와 심신이 온통 김매기에 쏠려 있는데 원고마감까지 닥쳤으니 아니 그렇겠나. 풀은 하루가 다르게 무성해지고 벼 포기가 치이는데 이렇게 손발이 묶여 있으니 갑갑하기 이를 데 없다. 그러니 새벽 단잠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다. 어서 숙제를 해치우고 김매러 나가봐야 한다는 생각 뿐.
재작년의 악몽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형국이다. 지난해는 모내기철에 맞춰 넉넉히 비가 내리는 바람에 단 사흘 만에 김매기를 마칠 수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하늘이 영 도와주질 않았다. 가문 날씨가 이어지면서 논풀이 제 세상을 만났다. 게다가 짓는 논이 재작년보다 갑절 늘었으니 김매는 데 들여야 할 품도 그만큼 늘 수밖에 없다.
아니나 다를까, 보름째 김매기에 매달렸지만 작업진도는 고작 20%. 뻐근한 등짝에 끊어질 듯한 허리, 허청대는 다리는 그만두고 일에 끝이 보이지 않으니 애가 탄다.
첫 출발은 상큼했다. 군데군데 빽빽이 피가 올라와 ‘난코스’로 꼽아둔 논배미를 이틀 만에 가뿐히 끝내고나니 다소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복병을 만났다. 물달개비. 잎이 하트 모양으로 자라고, 나중엔 보라색 꽃이 피는 어여쁜 풀이지만 벼와 영양분을 다투는 ‘웬수덩어리’다. 그 놈들이 논바닥을 온통 장악해버린 곳이 대 여섯 배미나 되니 그야말로 속수무책이다. 그 많은 걸 일일이 손으로 뽑아낸다는 건 처음부터 가당한 일이 아니다. 물을 쫙 빼내고 농약을 치면 고스러져 죽는단다. 차라리 벼농사 때려치우고 말지 그 짓은 할 수 없고.
여기저기 의견을 구한 끝에 농업기술센터에서 중경제초기를 빌려다가 일차로 기세를 죽인 뒤 우렁이를 더 사다 넣었다. 기계제초란 게 손 김매기와 견줘 깔끔하지가 못하다. 우렁이가 나머지를 모두 뜯어먹을 거란 보장도 없으니 어차피 손을 써야 한다. 하여 아직도 물달개비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짐작컨대 한 달이 걸리면 다행일 것 같다. 오기로 달려들었다가 참담하게 끝난 재작년의 ‘트라우마’도 있고 해서 이번엔 ‘한 수 접어’ 가고 있다. 농사란 건 어차피 하늘의 몫이 크다는 걸 절감한다. 깜냥껏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볼 뿐이다. <함께하는 품 20140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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