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6. 10. 22:07ㆍ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마을 뒤 와우산은 이제 신록을 지나 녹음으로 치닫고 있다. 논들이 줄지어선 들판에는 연보랏빛 자운영 꽃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지고 있다. 봄날이 가고 있다는 신호다. 그 숱한 ‘꽃타령’을 뒤로 하고 마침내 벼농사 철에 접어들었다는 얘기다
벼농사는 올해로 3년째. 이제야 그럭저럭 맥이 짚이는 느낌이다. 언제가도 얘기했지만 농사라는 건 뭐니 뭐니 해도 ‘경험’이 첫째다. 시행착오를 거듭하면서 일머리를 깨치게 된다는 얘기다. 한 번 혼쭐이 나면 다시는 같은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원리랄까. 나만 해도 그렇다.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니, 지난해까지는 일을 하면서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다가 몇 차례나 큰 사달을 내고 말았다. 못자리를 망치는 바람에 다시 볍씨를 담갔고, 논바닥을 제대로 말리지 못한 나머지 낫으로 벼를 베기도 했다.
그렇게 쓴맛을 보고나니 ‘학습효과’ 하나는 제대로다. 모내기 준비를 하고 있는 요즘이 그렇다. 지금은 모 농사 단계. 적어도 하루 한 차례 못자리를 둘러본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자전거에 엉덩이를 걸친 채 말 그대로 휘 둘러보고, 물을 대주는 게 고작이었다. 부직포 아래에서 볍씨가 말라 죽어가는 것도 눈치 채지 못했던 거다. 지금은? 날마다 일곱 두둑 부직포를 일일이 들춰 모 상태를 살핀다. 이게 아니다 싶으면 득달같이 ‘벼농사 사부’ 광수 씨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하다. 그 덕분인지 모는 잘 자라고 있다. 6월 첫 주 모내기에 별 문제가 없을 듯하다.
그 다음은 논두렁. 논두렁은 그냥 경계선이 아니다. 농사꾼이 다니는 길이자 무엇보다 물을 가두는 보 구실을 한다. 제초제를 쓰지 않고 풀을 잡는 유기농에서는 논바닥이 드러나지 않도록 물을 높이 대야 한다. 호기성 식물인 피가 싹을 틔우지 못하도록 공기를 차단하는 것이다. 그러자면 미리미리 논두렁을 손봐야 한다. 지난해까지는 그냥 넋 놓고 있다가 나중에서야 곤욕을 치렀다. 일단 모내기를 하고 나면 흙을 긁어모으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길을 내고, 물을 대는 일도 중요한 일과다. 엊그제 샘골 애벌갈이를 했다. 트랙터를 모는 제실 강 씨가 귀에 못이 박히도록 하는 말. “샴골처럼 질척질척한 논은 물을 철렁철렁 잡아놔야 혀요. 그려야 트랙터 발통이 팍팍 치고 나갈 수 있으니께..." 그 얘길 듣고도 ‘반응속도’가 너무 느려 물을 제대로 잡지 못했더랬다. 올해는 진작부터 움직이고 있다.
저수지에서는 수로를 따라 농업용수를 흘려보낸다. 수로 곳곳에는 콘크리트 보가 설치돼 있는데, 수문을 막으면 수위가 높아지고 유입구로 물이 흘러드는 구조다. 지금까진 얼기설기 수문을 막았다가 물이 줄줄 새는 바람에 낭패를 봤던 터다. 이번엔 수문의 너비를 정확히 잰 다음 두툼한 나무판자를 구해다가 톱질하고 못질해서 딱 맞게 끼웠다. 확실히 물이 잘 잡힌다.
물을 대는 일 못지않게 배수도 중요하다. ‘중간 물떼기’라고 해서 잠깐씩 물을 빼야 하고, 추수를 앞두고는 콤바인 작업이 어렵잖게 논바닥을 말려야 한다. 그러자면 미리미리 배수체계를 잘 갖추어 놓는 게 좋다. 물꼬를 정비하는 한편 고랑에 물이 잘 흐르도록 퇴적물을 퍼내야 한다. 작은 준설작업인 셈이다. 사실 퇴적물보다는 깊게 뿌리를 내린 갈대 따위를 캐내는 게 더 어렵다. 쇠스랑질 몇 번에 가쁜 숨을 몰아쉰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건둥건둥 보낸 모내기 전 시간이 이리 빠듯해졌다. 그래야 뒤탈이 없고 일이 쉽다는 걸 알아챘기 때문이다. 사실 이 글을 쓰던 중에도 시간을 내 못자리와 물길을 둘러보고 왔다. 앞을 내다보며 일을 해치우는 게 스스로 대견한 요즘이다. <함께하는 품 2014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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