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내 '전선'에 서다

2014. 6. 27. 20:25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내 본시 평화를 사랑하는지라 '군사용어'를 그리 좋아하지 않지만
해마다 김매기 철이 되면 갑자기 전투적으로 돌변한다.
그러니 평화애호적 페친들께서는 너무 타박하지 마시란 얘기부터 깔아두고...
옛부터 벼농사에서 가장 고된 일로 첫 손에 꼽는 것이 바로 김매기다. ...
뙤약볕 아래 비지땀을 흘리면서 허리를 혹사시키는 노동.
게다가 한 번에 그치지 않고 두 벌, 심지어 세 벌까지 이어지니
오죽 힘겨웠을까.
음력 7월15일에 벌이는 '백중(百中 )놀이'가 바로 이 세벌 김매기를 끝낸 노고를
위로하는 잔치라는 건 잘 알려져 있다.
나한테도 김매기는 벼농사에서 가장 큰 고비이고,
'트라우마'에 가까운 기억도 안고 있다.
그러니까...
몹시 가물었던 그러께, 엄청나게 피가 올라왔더랬다.
그 가운데서도 샘골에 있는 네 마지기 배미는
벼보다 피가 훨씬 더 많은 '피바다'를 이루었지.
그 피를 뽑겠다고 한 달 넘게 매달렸던 끔찍한 기억.
그래서, 김매기를 앞두고는 몹시 긴장되고, '전의'의 거듭 다지게 되는 거다.
그리고 오늘, 그 '전쟁'이 시작된 것이다.  

3년 된 밀짚모자의 '퇴역'과 새 밀짚모자의 '취역'

 

올해의 격전지는 새로 넘겨 받은 샘골 오이배미.
귀농한 후배가 짓던 논인데 물빠짐이 워낙 좋지 않아 한 해만에 손을 들었다.
그걸 잘 알고 있지만 농기계 진입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떠 안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지난해 피 씨앗을 엄청나게 받았더라는...
아니나 다를까, 모내기철 가뭄을 틈타 피가 빼곡히 올라왔고,
긴급처방으로 우렁이를 두 번이나 집어넣었더랬다.
그리고 올해 '김매기 전쟁'의 첫번째 전장이 되었다.
전의를 다지고 다졌던 탓인지 일이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두 마지기 남짓 되는 넓이인데, 해가 지기 전에 대충 마무리 됐다.
짐작컨대 집중투입한 우렁이가 힘을 좀 쓴 듯 하다.
'서전'이 이렇듯 무난하게 마무리되니 한결 마음이 놓인다.
그나저나 올해는 몇일이나 걸릴까?
열흘? 보름? 뭐, 한 달이면 또 어떠리...

<피사리 전>

 

<피사리 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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