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8. 31. 23:38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역시 세월을 거스를 순 없는 모양이다. 김매기는 아득하고, 불볕더위는 야속하던 게 엊그젠데 어느새 바람이 선선하다. 벼이삭은 차츰 고개를 깊이 숙이며 황금물결을 예고하고 있다. 추석이 코앞이니 계절은 바야흐로 ‘결실’을 노래할 참이다.
무릇 세월이 가면 달라지는 것이 만물의 이치다. 그러나 흐르기만 할 뿐 아무 것도 바꾸지 못하는 ‘세월’도 있다. 아니, 이 ‘세월’은 4월16일에서 딱 멈춰 있다고 해야 할 것 같다. 세월호 참사를 말함이다.
꽃 잔치로 눈부시던 날은 뜨거운 여름을 지나 가을 문턱에 다다랐지만 세월호는 여적 컴컴한 바다 속에 그대로 잠겨 있다. 함께 가라앉은 삼백넷 귀한 생명은 아무도 살아오지 못했다. 아이를 잃은 부모들과 식구를 떠나보낸 유가족들의 가슴 속 피멍은 아직도 풀리지 않은 채다. 생때같은 피붙이라도 숨이 멎으면 놓아줄 수밖에 없는 게 인간사다. 하지만 너무 억울해 한을 품은 넋은 원혼이 되어 구천을 떠돈다고 했다. 맺힌 한을 풀어주고서야 원혼은 안식을 얻고, 남은 사람도 제 자리로 돌아갈 수 있는 법이다.
그 큰 배가 침몰했는데 단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다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 것이다. 역시나 구조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근거와 정황이 속속 드러났다. 그래서 “내 새끼가 대체 왜 죽어야 했는지 알아야겠다”며 부모들은 가슴을 쥐어뜯었고, 이에 공감하는 시민사회가 함께 나서게 되었다.
우리 고장에서도 지난 5월17일부터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집회가 열렸다. 한 독서모임이 맨 처음 제안했다. 비록 내 아이, 우리 식구의 비극은 아니지만 복받치는 안타까움과 분노를 가눌 길 없어 “뭐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뜻을 모은 것이다.
지금도 고산읍내에서는 주말마다 집회가 열리고 있다. 오늘로 열여섯 번째다. ‘완주군민대회’라는 이름이 붙었지만 참가자는 주로 고산, 화산, 비봉 등 북부지역 사람들이다. 몇 차례 집회가 열리고 나서 준비모임을 확대, 개편했다. 꾸준히 집회에 나왔다는 게 구실이 되어 나 또한 준비모임의 일원으로 엮이게 됐다.
집회는 참사 이후 상황과 전국의 진상규명 움직임을 공유하는 한편 저마다 자신의 소견과 의지를 밝히는 내용으로 진행된다.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시간이 흘러도 집회열기가 식지 않아 다행이 아닐 수 없다. 상황이 좀 비상하다 싶을 땐 참가자가 외려 늘어난다. 때로 <도전 골든벨> 형식을 빌려 세월호 사태의 진실을 알리는 등 집회가 식상해지지 않도록 애쓰고 있다.
사실 인구 1만을 헤아리는 한적한 시골에서는 쉽지도 않거니와 무척 드문 일이다. 나아가 이 고장에서 특정 이슈를 내건 주말집회를 석 달 넘게 이어가는 건 처음이라 들었다. 무엇보다 사태의 진실을 투명하게 밝히라는 것이다. 그래야 참사가 빚어진 근본원인을 파악할 수 있고, 참된 교훈을 찾을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모두가 바라는 ‘재발방지’의 길 아니던가.
그러나 ‘유민 아빠’ 김영오 씨가 두 달 가까운 단식을 중단하면서 지적했듯이 사태해결의 실마리는 풀리지 않고 하염없이 길어질 조짐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이 직접 약속한 ‘유가족이 원하는 세월호 특별법제정’을 지키지 않는 까닭이다. 하지만 이 첫 단추를 꿰지 않고는 결코 진실을 밝힐 수 없음을 누구나 안다.
더 많은 사람이, 더 강하게 뜻을 모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매주 토요일 저녁, 고산미소(아고라)광장은 늘 당신을 기다린다. <완두콩 201409>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누리에 말걸기 > <농촌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난데없는 <인문학> 교수 노릇 (0) | 2014.11.02 |
---|---|
와일드푸드 축제 뒷담화 (0) | 2014.10.05 |
쌀 관세화, 농가가 안 됐다고? (0) | 2014.08.04 |
김매기 또는 처절한 '전쟁' (0) | 2014.07.09 |
타는 들녘 (0) | 2014.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