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1. 2. 19:59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가을걷이가 한창인 들녘은 이제 황금빛에서 흙빛으로 돌아가고 있다. 비록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가을비가 자꾸 내리는 통에 마음을 졸였지만 그렇다고 ‘수확의 기쁨’까지 앗아가는 건 아니다. 나로서는 이 가을에 또 하나 거둬들인 게 있어 기쁨이 곱절이다.
지난 7월부터 퍼머컬처대학 ‘인문학’ 과목을 맡아 강의를 해왔는데, 얼마 전 넉 달에 걸친 2학기 과정이 마무리된 것. <온누리살이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이 교육과정은 일종의 ‘대안 대학’이며, 이번에는 공개강좌 형식을 띠었더랬다. 강의실은 고산면 삼기리 지역경제순환센터를 이용했는데, ‘시골살이와 여가’를 주제로 한 야외수업이 마지막을 장식했다. 전남 담양 일원의 정자-원림 답사를 겸해 진행된 이날 수업은 곱게 물들어가는 정취에 한껏 취한 즐거운 가을소풍이기도 했다.
이날 분위기처럼 인문학 ‘농사’는 그런대로 결실이 괜찮았던 것 같다. 후속 모임도 이어가기로 했다. 하지만 처음 강의 제안을 받았을 때만 해도 ‘뜬금없다’는 느낌이었다. 농사지어 먹고 사는 처지인데다, 귀농 전에도 사회운동에 몸담았던 터라 인문학은 내 전문분야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고심 끝에 제안을 받아들였다. 학교 쪽이 뜻밖의 제안을 하기까지는 그럴만한 사정이 있었을 테고, 나름의 판단을 거쳤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인문학은 나름대로 관심이 많은 분야였고, 스스로도 깊이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가 컸다. 인문학은 실상 ‘먹고 사는 문제’와 그닥 관계가 없고, 삶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여백’ 같은 세계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과학적 엄밀함보다는 ‘이야기’에 가깝다는 점도 강의를 맡는 부담감을 덜어주었다.
이런 사정을 두루 감안해 ‘시골살이 인문학’이라는 부제 아래 시골살이의 철학과 생태적 삶, 농사의 가치, 농촌공동체, 소통, 자아실현 같은 주제를 살펴봤다. 아울러 소통을 위한 글쓰기를 두 차례 특강으로 다뤘다. 다뤘던 주제에서도 알 수 있듯 이번 강좌는 교양도 교양이지만 무엇보다 시골 사는 이들의 실생활과 관계가 깊은 내용이라 활발한 토론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처음부터 일방적인 교수-학습 관계 대신에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는 과정이 되기를 바랐다. 게다가 서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을 만큼 적은 인원에다 거의 매번 자정을 넘겼던 뒤풀이까지, 이번 강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고 했다. 물질적 풍요에만 매달리다가 삶이 덧없다 가슴을 쳐봤자 때는 이미 늦다. 위기를 맞은 지구 생태와 공생하면서 저마다 참다운 가치를 추구한다면 비록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음을, 나는 이번 강좌를 통해 얘기하고 싶었다. 다들 도시를 떠나 시골살이를 선택한 이들이라서인지 다른 뜻은 없었다.
‘철없는’ 가을비 탓에 벼수확을 마무리하지 못해 걱정 태산이다. 하지만 이번 인문학 강좌에서 거둬들인 소중한 결실은 그 애달픔을 씻어내고도 남음이 있다. 이 또한 시골살이가 행복한 이유다. <완두콩 201411>
파이 서비스가 종료되어
더이상 콘텐츠를 노출 할 수 없습니다.
'누리에 말걸기 > <농촌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벼농사 공부 (0) | 2015.01.12 |
---|---|
농한기, 싸전 그리고 이효리 (0) | 2014.12.08 |
와일드푸드 축제 뒷담화 (0) | 2014.10.05 |
석 달... 아! '세월'이여! (0) | 2014.08.31 |
쌀 관세화, 농가가 안 됐다고? (0) | 2014.08.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