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9. 19:29ㆍ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38년만의 이른 추석’이 지난 뒤끝이라선지 한결 넉넉하고 느긋한 느낌이 묻어나는 오후다. 노랗게 익어가는 벼이삭이 눈에 들어온다. 많이 여물어 고개를 푹 숙인 모습이다. 수고로웠던 한여름이 언제냐 싶게 세월의 덧없음을 실감하게 된다. 그러나 뙤약볕 아래 구슬땀깨나 쏟았던 흔적은 호리호리해진 몸매에 아직도 남아 있다.
“이젠 날렵한 체형으로 굳어지는 거 아녜요?”
그새 얼마나 말랐는지 스스로 체감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 하지만 보는 이마다 일깨워주니 그런가보다 할 밖에. 하긴 체중계에 나타난 숫자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겠지.
이게 다 그 놈의 김매기 탓이다. 안 좋은 예감은 빗나가지 않는다고 했나. 김매기는 결국 한 달 보름을 넘겼다. 게다가 일을 끝내지 못한 상태에서 어쩔 수 없이 그만둬야 했다. 그 새 깊게 뿌리내린 피를 더는 뽑아내기 어렵게 된 탓이다.
차라리 잘 되었다 싶은 게 그야말로 ‘고난의 행군’이었다. 35도를 오르내리는 한낮엔 엄두도 낼 수 없는 게 김매기다. 아침나절 네댓 시간, 한낮엔 쉬고 열기가 식는 저녁 무렵에 두어 시간 하는 식이다. 그래도 한여름이니 몸뚱이는 금세 땀으로 젖고, 일을 마칠 즈음엔 온통 땀으로 목욕한 꼴이 되고 만다. 날마다 몇 시간 씩 ‘싸우나’를 해댄 셈이니 말라도 삐쩍 말랐을 법하다.
돌아보니 그러께의 기억은 결코 ‘악몽’이 아니었다. 올해 가뭄이 그 때보다 더 심했다니 논풀 또한 그만큼 드셀 수밖에. 피 뿐이었다면 차라리 다행인 게 물달개비는 물론 올챙이고랭이라는 ‘수퍼잡초’까지 올라왔다. 심지어 이 세 가지가 ‘종합세트’를 이뤄 바닥을 온통 뒤덮은 논배미까지.
이래서는 손 김매기로 될 일이 아니다. 하는 수 없이 제초기계를 썼다. 온종일 기계소음에 시달리며 단순반복 작업을 계속하다보니 일할 맛도 나지 않았다. 그나마 대학생 농활대 예닐곱이 이틀 동안 거들어주는 바람에 위로를 얻기도 했지만 ‘이렇게까지 농사져서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회의감에 시달려야 했다.
어느새 ‘옛날 얘기’가 되었다. 벼이삭까지 올라온 마당이니 더 이상 할 것도 없고, 기껏해야 내년 농사를 위해 피 이삭을 베어내는 정도다. 작황이 어떤지 가늠하는 눈은 아직 모자라지만 주변사람들은 농사가 제법 잘 되었다고 추켜세운다. 그래봤자 떼돈 벌 일은 없으니 그저 덤덤할 뿐이다. 아니, 설핏 걱정이 되는 형국이다.
지난 7월 ‘관세화를 통한 쌀 전면개방’을 선언했던 정부가 관세율을 513%로 책정해 협상에 나서겠다고 어제 발표했다. 오늘은 밥 먹으면서 이 문제를 다루던 당정협의회 자리에 몰려간 농민들이 달걀을 던지고, 고춧가루를 뿌리는 일이 벌어졌다. 관세율을 얼마로 책정하든 정부의 쌀 전면개방 조치가 어떻게 귀결될지 뻔하니 농민들은 격분할 수밖에 없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어떤 정권이냐는 문제도 아니다.
“선거 때 1번 찍어놓고는 이제 와서 왜 그래?” 포털 기사에 딸린 이 따위 댓글에 ‘추천’이 몰리는 걸 보면 부아가 치민다. 요즘 화제와 논란을 부르고 있다는 책 제목 ‘싸가지 없는 진보’를 떠올리게 한다. 이 사람들아! 농민을 죽이는 농업정책은 ‘이명박근혜 정권’이 아니라 문민정부에서 싹터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숙성된 거라고!
이런 어설픈 정치논리는 문제의 본질을 흐리고, 올바른 인식을 가로막는다. 문제는 정권이 아니라 철학과 정책기조 아니던가. 적자생존, 비교우위론 따위 시장만능 논리가 국가정책을 지배하는 한 비극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 때 유행하던 개그 한 토막이 떠오른다. “초유의 기상이변 닥치고, 식량대란 겪어봐야~ 아, 자동차-휴대폰은 밥이 될 수 없구나! 하고 식량주권 귀한 줄 알게 될끼야!” 그 때 가서 후회해봤자 이미 늦다.
갈수록 기후변화가 심상치 않은 판에 미증유의 식량대란이 오지 않을 거라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말이다. ‘식량주권’은 오히려 쌀을 사먹는 소비자들에게 절박하다. 나는 ‘쌀전업농’이다. 그거 1만평 남짓 지어봤자 기초생활이나 근근이 꾸릴 수 있다. 전면개방 뒤 시장쌀값이 떨어지더라도 더 이상 나빠질 게 없다는 얘기다. 그나마 손수 쌀농사를 지으니 밥 굶을 일은 없지 않겠나... 쓴웃음을 짓는다.
이제 국가에 대해서는 털끝만한 기대도 없다. 눈꼽 만치라도 싸가지가 있어야 싸울 엄두라도 내지. 게다가 이젠 다들 꼬부라진 노인네가 되어 그럴 기력조차 없다.
이제 기댈 것은 딱 하나, 소비자와 농사꾼의 ‘가치연대’밖에 없지 싶다. 시장쌀값이 떨어지는 걸 반기는 대신 그것이 부를 어두운 미래를 걱정하는 소비자가 그립다. 생태 가치를 함께 나누며, 생명을 살리는 농사에 힘을 보태는 소비자가 늘어났으면 좋겠다. 이 가치연대의 고리가 끝없이 이어져 마침내 생태농사와 식량주권이 되살아나는 그런 날을 꿈꾼다. 한낱 헛된 꿈일 뿐일까? <함께하는 품 20140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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