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살이의 인문학'이란다

2014. 7. 16. 16:31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일만하면 소, 공부만 하면 도깨비

홍성 풀무학교에서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얘기라고 한다. 공부와 노동은 함께 가야 한다는 가르침이 담겨 있다. 어디 학생뿐이겠는가. 몸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는 더더욱 소중한 덕목이 아닐 수 없다. 농사꾼에게는 흔히 신기술 보급 같은 실용교육이 강조되는데, 그보다는 마음의 양식이 더 중요하다는 게 내 생각이다. 한창 바람이 불고 있는 인문학강좌같은 걸 꼽을 수 있다. 이 고장도 예외는 아니라서 여기저기 강좌가 마련돼 사람들의 발길을 끌고 있다.

 

어쩌다보니 이곳에 둥지를 튼 온누리살이학교에서 운영하는 퍼머컬처 대학과정’ 2학기(7~10) 인문학 수업을 맡게 됐다. 이 교육기관은 생태적인 삶과 지속가능한 지역사회를 추구하는 2년제 대안학교다. 인문학, 환경생태학, 사회경제학, 농촌경영학 같은 필수교과와 지역개발, 농업, 흙건축 같은 전공교과가 개설돼 있다.

 

지난해 가을이던가, 귀농을 주제로 특강을 한 적이 있었는데, 이번에는 일주일에 한 번 인문학 과목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전혀 뜻밖이었고, 그 동안 다뤄본 적도 없는 분야라 주제 넘는 짓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러나 고심 끝에 해보자고 했다.

 

두 가지 생각이었다. 하나는 지금 쓰고 있는 새내기 농사꾼일기와 같은 맥락이다. 이 교육과정을 수강하는 이들은 대부분 도시에 살다가 얼마 전 귀농(귀촌)을 했거나 대학을 갓 졸업한 이들이다. 시골살이 3년이 지난 나로 말하자면 시골과 도시의 경계인이라 할 수 있다. 아직은 도시물이 다 빠지지 않아 이들과 공유하는 정서가 남아 있으니 소통이 훨씬 쉽겠다는 생각.

 

또 하나는 스스로 일삼아 공부하고 싶었던 내용이었다는 점이다. 아무리 간절해도 계기가 주어지지 않으면 실행하기 어려운 게 공부 아니던가. 시골에 살면 책 볼 시간도 많으리라 기대가 컸는데, 그 동안 생각보다 많이 보지 못했다. 여전히 읽어내는 책보다 욕심껏 사들이는 책이 더 많아 스스로 불만이다. 이런 상황에서 강의를 맡게 됐으니 참 좋은 계기가 되겠지 싶은 것이다.

강의제목은 시골살이의 인문학’, 열다섯 차례 수업 주제도 설정했다. 탈성장론, 생태가치, 농사인문학, 농촌공동체, 지역운동, 교육, 여가, 글쓰기특강 따위. 뽑아놓고 보니 스스로 목말랐던 내용이다.

 

어제 처음으로 수강생들과 만났다. 일방적으로 지식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니라, 대화와 토론을 통해 서로 가르치고 서로 배우자고 뜻을 모았다. 강의실의 격식을 벗어던지고, 시원한 맥주로 목을 축이며 얘기를 주고받다 보니 애초 설정된 수업시간을 훌쩍 넘겨버렸다. 이렇게 시골살이의 새 지평이 또 하나 열리나보다. <함께하는 품 2014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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