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9. 19. 19:10ㆍ누리에 말걸기/<함께하는 품>
엊그제는 ‘면민의 날’ 행사가 열렸다. 그 유래나 의미를 장황하게 살펴볼 필요는 없겠고, 실상은 어르신이 대부분인 ‘주민위안잔치’라 할 수 있다. 평일에 열리다보니 젊은 직장인은 함께 하기 어렵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좀 더 엄밀히는 ‘농업-자영업 종사자들의 잔치’ 쯤 되겠다.
도시인한테는 별 볼일 없을 것 같은 이 행사가 뜻밖에 성황을 이룬다. 면 전체인구가 5천 남짓인데 참가자가 1천명을 웃도니 사실상 주민 절반은 몰려든 셈이다. 예산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해마다 열리지는 않는다. 나는 4년 전에 참석하고 이번이 두 번째다. 그 때는 귀농 첫해, 그것도 이사하고 두어 달밖에 안 된 때라 모든 게 낯설었다. 아는 사람이라고는 손에 꼽을 정도였으니 오죽했겠는가. 뻘쭘하게 끼어 있다가 줄다리기 경기에 출전하고서는 곧장 돌아왔던 기억이 남아 있다.
올해 행사도 프로그램은 똑같다. 기념식에 이어 각설이, 설장구, 춤공연 따위가 펼쳐진 뒤 마을대항 체육행사가 펼쳐진다. 축구, 배구, 단체줄넘기, 줄다리기, 이어달리기 따위 종목이 토너먼트로 진행되고, 점수를 집계해서 종합우승을 가린다. 체육경기 뒤에는 주민들의 노래경연과 경품추첨으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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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사 자체로는 4년 전과 다를 게 없었다. 나로 말하자면 운동경기는 젬병이라, 이번에도 줄다리기 선수로만 나섰는데 우승까지 거머쥐었다. 단 한 번도 지지 않고, 세 팀 여섯 판을 내리 이긴 것이다. 우리 동네 젊은층 비율이 유난히 높은 덕이었다.
올해는 줄다리기가 끝나고도 자리를 뜨지 못했다. 4년 세월이 짧지 않은 듯 대부분 아는 얼굴이라 인사를 주고받기 바빴다. 동네 응원석에 차려진 술상마다 몇 순배가 돌고 나서야 지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중장년에 국한된 얘기다. 한 동네 어르신들이야 오다가다 자주 마주치고, 더러 농사얘기도 주고받으니 낯이 익지만 다른 동네 어르신하고는 어울릴 기회가 거의 없었으니 당연하다. 세대차에, 문화적 차이도 적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다른 볼일 때문에 끝까지 함께하지 못하고 노래자랑이 시작될 때 쯤 빠져나왔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 년 새 많이 섞여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뻘쭘한 구석이 있다. 귀농 또는 귀촌하겠다고 외지에서 들어온 이주민이 꽤 되는 고장이다. 때문에 ‘원주민사회’에 끼어들어야 한다는 강박이 그리 크지 않은 편이다. 이주민들끼리 어울리더라도 아쉬운 게 별로 없기 때문이다. 원주민이 되레 아쉬운 경우가 더러 있다.
반면 동네 어르신들과 ‘농사’라는 공통분모를 둔 나는 좋으나 싫으나 어울린다. ‘2%’ 뻘쭘함이 이주민의 숙명인지, 애를 쓰면 넘어설 수 있는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볼 일인 것 같다. <함께하는 품 2014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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