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7. 15:23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날씨가 흐려 ‘교교한 달빛’은 아니지만 보름달이 동녘 하늘에 떠올랐다. 횃불을 든 이장님이 푸른 대나무를 두른 달집에 불을 댕겼다. 대마디가 뻥뻥 터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불길이 하늘로 치솟는다. 불붙은 소원지가 허공에 흩날리고, 아이들이 환호성을 내지른다.
지난 대보름날 저녁, 마을 앞 논바닥은 분위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타들어간 달집이 모닥불을 이루자 중장년 남녀가 그 둘레에 모여들어 따끈하게 데운 청주 잔을 들고 얘기꽃을 피웠다. 스물을 헤아리는 아이들은 불 깡통으로 빨간 동그라미를 그리며 여기저기 쥐불을 놓았다. 그 불빛과 달빛이 어우러져 보름밤이 아스라이 깊어 간다.
이런 풍경, 얼마만인지 모른다. 산업화에 따른 이농바람에 시골마을은 ‘노인촌’으로 바뀐 지 오래고, 세시풍속과 전래놀이도 시나브로 자취를 감췄더랬다. 그런 현실에 비춰 볼 봤을 때, 우리 마을엔 이번 대보름날 고목나무에 꽃이 피었다. 하지만 이건 우연이 아니다.
그러니까 대보름을 며칠 앞 둔 주말, 창수 씨한테서 전화가 왔다. 창수 씨는 지난 봄, 이 마을 귀촌인 모임(<완두콩> 2014년 4월호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Fj2v&articleno=7126013&categoryId=22736®dt=20140406132351)을 이끌어낸 사람으로 ‘청년회장’ 격이라 할 수 있다.
“이번 대보름날 달집도 태우고, 쥐불도 놓을 참인데요. 형님이 짓고 있는 마을 앞 논이 안성맞춤이라...”
두 말 않고 그러자 했다. 창수 씨와 그 또래들은 나무 잔가지를 잔뜩 구해다가 논바닥에 쌓아뒀고, 뒷산 아래 대숲에서 대나무를 잘라 왔다. 그런데 이들의 ‘모의’는 달집태우기가 다가 아니었다. 점심때는 마을회관에 어르신들을 모시고 대보름 쇠머리국밥 잔치를 벌였던 것. 며칠 전부터 쇠머리를 사다가 씻고, 도끼로 손질해서 고았다고 한다. 거기다 누구는 떡을 내고, 누구는 만두를 협찬해서 푸짐한 상이 차려졌다. 이주민 아낙들도 우르르 몰려들어 상차림을 도왔다.
뜻하지 않은 잔치에 함께 한 어르신은 모두 쉰 명 남짓, 다들 흐뭇한 표정이다. 마을 노인회장님은 고마움을 전하면서 “더러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빼낸다’는 얘기가 있는데, 그거 다 속없는 얘기니 괘념치 말라”신다. 이장님도 “이장단회의 때 보면 다른 동네 이장들은 이주해온 사람들이 말썽만 일으킨다고 흉보기 바쁜데, 저는 외려 자랑하기 바쁘다”고 맞장구를 친다. 창수 씨는 창수 씨대로 “우리 마을 어르신들이 다른 동네보다 점잖고, 너그러우셔서 저희도 마음이 편하다”고 화답한다.
지난해 ‘마을청년회’를 꾸리던 날이 떠오른다. 어차피 이 마을에 정착할거라면 어르신들과 함께 섞이고, 마을공동체를 되살리자고 했었다. 나는 이번 대보름이 그런 뜻을 실행에 옮기는 첫발이라고 믿는다. 마을 ‘청년들’은 내친 김에 당산제도 되살려보자는 뜻을 내비쳤다. 해마다 당산제를 거르지 않았었는데, 어르신들 기력이 떨어지면서 몇 해 전부터 전통이 끊겼다는 얘기를 듣고 나서다. 물론 쉽지만은 않겠지만 그 뜻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뜻한다고 해서 모든 게 곧장 이루어지는 건 아니다. 마을 대보름놀이가 되살아나기까지 몇 해가 걸렸던가. 그저 부쳐 먹는 논을 대보름 놀이판으로 내주고, 청주 몇 병 내놨을 뿐인 나로서는 이 모두가 고맙고도 고마울 따름이다. 월간 <완두콩> 2015년 3월호 고정칼럼 '농촌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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