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6. 16. 08:42ㆍ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여름지기의 노래
애타게 기다리던 비가 내리고 있다. 오락가락 이긴 하지만 이따금 주룩주룩 시원하게 쏟아 부으니 체증이 확 뚫리는 기분이다. 타는 가뭄 속에서 모내기를 마친 게 바로 어제다. ‘000년 만의 가뭄’ 같은 뉴스는 듣지 못했지만 느낌으로는 지난해보다 더 심하다. 오죽했으면, 모터펌프로 관정 물을 며칠 씩 품어대도 논갈이와 써레질을 할 수 없는 지경이었으니.
물론 논배미마다 여건이 다르다. 수로가 지나는 논은 큰 어려움이 없었으나 가뭄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으니 저수지 수문 여닫는 문제로 신경전이 치열했다. 분명 수문을 열어 두었는데 두어 시간 뒤 가보면 물이 쫄쫄쫄. 누군가 다시 틀어막아 놓았다. 그나마 관개수로를 갖추지 못해 도랑물이나 관정에 목을 매는 곳에서는 물싸움 얘기가 심심찮게 들려오던 마당이다. 그러니 이 시원한 빗줄기는 온갖 조바심과 갈등을 한 방에 날려버리는 선물인 셈이다. 단비, 바로 그거다. 꿀물이라고 이보다 달콤할까?
이런 분위기에서 지난 한 주일은 그야말로 ‘폭풍처럼’ 지나갔다. ‘고양이 손이라도 빌린다’는 모내기철이니 오죽할까마는. 내가 부쳐 먹는 논은 50마지기(1만평) 남짓. 산간초입인 이 근동에서는 ‘대농’으로 치는 경작규모다. 그거 모내기 하자면 사나흘은 족히 걸린다. 그런데 기계로 모를 내는 요즘엔 이앙기 몰기보다 모판 나르는 게 큰일이다. 일손이 넉넉하면 부담이 덜하지만 흔히 작업조를 2인1조(이앙기 조작-모판 공급)로 짜니 빡빡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매끄럽게 모내기 작업을 하자면 모판을 미리미리 날라놓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적어도 모내기 이틀 전부터는 모판을 나르는 거다. 그렇게 눈코 뜰 새 없는 일주일이 흐른 것이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 모 때우고, 덧거름 주고, 김을 매는 농작업이 끝없이 이어진다. 다만 큰 매듭을 짓고 나서 잠깐 한숨을 돌리고 있는 참이다.
논농사를 1만평이나 짓는다고?
농사가 익숙하지 않은 이들은 잘 못 들었나 싶을 게다. 귀농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1만평이나? 1천평 아냐? 그러나 분명 오타가 아니다. 기계화된 벼농사에서 1만평은 그리 큰 규모가 아니다. 손작업이 절대적인 밭농사와 달리 벼농사는 트랙터-이앙기-콤바인을 굴리는 ‘석유농업’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역대정부의 ‘저곡가정책’ 탓에 그 이상의 경작규모를 갖춰야 웬만큼 수익을 낼 수 있다. 그 점에서 보자면 실상 1만평도 턱없이 적다. 그것이 오늘날 농업의 현실이다.
말이 나온 김에 요즘 우리사회 ‘한쪽구석’의 쟁점인 밥쌀 수입논란을 짚어보자. 많은 이가 “이게 무슨 소린가” 싶을 것이다. 그만큼 식량주권, 먹거리 안전 같은 우리 삶의 기본이 되는 문제가 관심권에서 멀어졌다는 거겠지. 아무튼, 지난번 쌀수입 전면개방(관세화 전환)으로 최소시장접근물량(MMA)의 30%를 밥쌀로 수입해야 하는 규정이 없어졌는데도 정부(농수산유통공사)가 이전처럼 미국산 밥쌀 1만 톤을 구매하겠다는 입찰공고를 낸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왜 문제냐고? 한 마디로 쌀값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쌀 자급률은 80%대다. 여기에 밥쌀을 비롯한 의무수입물량을 들여오면 공급이 수요를 넘어선다. 지난해 쌀값만 봐도 그 전년보다 10% 남짓 떨어졌다. 15년 전 수준이다. 농민들한테는 안 됐지만 식품값이 떨어지면 어쨌든 소비자들로서는 반가운 일 아니냐고?
그 심정을 모르지 않는다. 찬거리를 준비하러 장을 보는 사람이라면 콩나물, 두부 따위의 가격대가 두 종류임을 알 것이다. 대략 두 배 차이가 나는데, 반값 제품은 수입산이고, 유전자조작(GM) 콩일 가능성이 높다. 주머니 가벼운 노동자들은 잠깐의 망설임 끝에 반값 식품을 집어 드는 게 보통이다.
그 뿐인가. 정부의 노력은 또 얼마나 눈물겨운가. 작황이 좋지 않거나 경작면적이 줄어 공급이 달리는 농산물은 값이 오르게 마련이다. 그러면 정부는 생활물가를 ‘안정’시키려 득달같이 외국산 농산물을 수입하거나 창고에 쌓아둔 물량을 시장에 풀어버린다. 반면 풍작이나 경작면적 증가로 가격이 폭락하면 그 자체로 생활물가가 안정되니 마지못해 ‘시장격리’ 조치를 내린다. 그래봤자 대세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결국 농사꾼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는다. 살아남는 길? 아주 좁은 틈새가 있긴 하다.
일단 내 농사는 잘 되어야 한다. 아울러 나를 뺀 그 작목 전반은 흉작이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 흉작이면 외국산을 수입해오니 ‘적당한’ 흉작이어야 한다. 그래야 ‘대박’을 칠 수 있다. 이것이 농촌사회에 퍼져 있는 농반진반의 자조적 이야기다. 비뚤어진 농업정책은 이렇듯 농민에게 비뚤어진 심성을 강요하고, 돈 될 만한 작목에 목을 매는 ‘한탕주의’를 만연시킴으로써 농업을 ‘투기산업’으로 변질시켰다.
하물며 쌀이라니. 전면개방과 밥쌀수입이 한꺼번에 닥치면 쌀값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반면 농자재며, 작업비 따위 생산비용은 오르기만 한다. 갈수록 수익구조가 나빠지는데 누가 쌀농사를 짓겠는가.
우리나라 농업인구는 이미 5%대로 떨어졌고, 그나마 대다수가 노년층이라 갈수록 줄어들게 돼 있다. 이들이야 오랜 경험과 쌀에 대한 애착 때문에 근력이 받쳐주는 한 벼농사를 짓는다지만 젊은 층은 다르다. 돈이 안 되는 벼농사를 지으려 하지 않는다. 고작해야 자기 먹을 쌀 정도다. 심지어 농사만 지어서는 살아가기 힘드니 대부분 겸업이고, 소득 면에서 벼농사는 ‘부업’의 지위로 떨어졌다. 쌀시장 상황이 더 나빠지면 벼농사를 아예 포기할 건 불문가지다.
이렇듯 우리 쌀을 내차는 건 어이없게도 정부정책이다. 이걸 모르는 이가 없으니 더 얘기해봤자 입만 아플 따름이다. 역대 그 어느 정부가 농민을 위한 농업정책을 폈던가? 노동자도 마찬가지지만 농민은 언제나 희생양이었고, 바둑판의 ‘버리는 돌’일 뿐이다. 노동자들은 숫자도 많고, 응집력도 강하니 목소리라도 내지를 수 있다지만, 얼마 남지 않은 이 땅의 늙은 농부들은 이제 싸울 기력도 떨어졌다. 안타까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쌀 위기’의 종착역은?
한편, 나는 이런 ‘쌀 산업’의 위기가 농민-농촌보다는 외려 소비자에게 닥친 문제라고 생각한다. 이미 바닥까지 떨어진 농민의 삶은, 농사를 포기한다고 해서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저 제 식구 먹고 살 만큼만 짓고, 그 밖의 생활비는 다른 일거리에서 버는 게 더 나은 상황 말이다.
그렇게 되면 도시 소비자들은 결국 외국에서 수입한 먹거리에 매달려 살아갈 밖에. 실제로 우리나라 곡물자급률은 24%(2014년)로 떨어졌다. ‘식량주권’이 길을 잃고 울고 있다. 쌀을 비롯한 곡물은 기초식량이다. 과일, 채소, 특용작물 따위와 달리 생명이 걸린 먹거리다. 수입 곡물은 장거리 수송을 위한 농약처리 같은 식품안전에 문제가 많다. 나아가 가파른 기후변화는 전세계적 식량대란을 경고하고 있다. 그 때도 우리는 지금처럼 필요한 식량을 수입해 올 수 있을까? 쌀의 위기는 다름 아닌 소비자의 위기라는 얘기다. 그런데 쌀수입 개방이나 밥쌀 수입을 두고 ‘가엾은 농민’만 걱정하고 있으니 딱한 노릇이다. 농민들 처지는 앞에서 얘기했다. ‘제 식구 먹고 살 만큼’은 짓는다고.
어쩌다보니 쌀 문제를 길게 늘어놓게 되었다. 밥쌀 수입이 농업현안으로 떠오른 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내가 ‘쌀 전업농’인 까닭이 크다. 어린 시절, 부모님의 논농사를 거들던 경험도 있고, 밭농사가 영 체질에 맞지 않아 선택한 나름의 ‘영농전략’이다.
내친 김에 쌀 위기를 헤쳐 나갈 나름의 해법까지 얘기해 볼까 한다. 앞에서 쌀 위기가 소비자의 위기라고 짚었는데, 그 점에서 해법 또한 소비자가 열쇠를 쥐고 있다. 한 마디로 우리 쌀을 소비하는 것이다. ‘제논에 물대기’ 같고, ‘국산품 애용운동’이 떠올라 좀 멋쩍긴 하지만 식량주권을 지키는 길은 결국 우리 쌀을 지키고 자급률을 높이는 것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좀 비싸더라도 수입산 콩 제품 대신 우리 콩 제품을 고르는 것이 건강과 식량주권에 보탬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하나 더, 건강과 식량주권에다 ‘생태’라는 가치를 이뤄내는 소비라면 더욱 바람직하겠다. ‘녹색혁명’을 계기로 도입된 화학농법(이른바 관행농)은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에 기대는 농사다. 사람의 건강을 해칠 뿐 아니라 땅을 오염시키고, 생태계를 파괴한다. 때문에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유기농이나 자연농 쌀을 소비하는 일은 결국 생태를 보전하는 실천이 되는 셈이다. 물론, 진보적 가치를 추구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유기농 쌀은 관행농 쌀보다 노동력은 더 들어가고, 소출이 적어 비쌀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상에 쌀만큼 싼 물건이 또 없다는 점을 감안해보라.
내가 벼농사만, 그것도 1만평 모두 농약과 화학비료를 전혀 쓰지 않는 유기농으로 짓는 데는 이 같은 생각이 깔려 있다. 아울러 지은 쌀은 전량 이 철학을 공유하는 소비자들에게 ‘도농직거래’ 방식으로 공급한다.
어느덧 4년째로 접어들었다. 이젠 한 해 농사주기를 훤히 꿰고, 그럭저럭 일머리도 갖춘 편이라 ‘초보’ 딱지는 뗀 셈이다. 벼농사에 얽힌 이야기나 농사현장, 시골살이의 애환 따위는 인터넷 블로그(http://blog.daum.net/chanamho)와 사회관계망서비스www.facebook.com/chanamho)에서 살펴볼 수 있다.
“어쩌다가 귀농하게 됐어요?”
이쯤에서 궁금해 할 법한 ‘지난 얘기’를 풀어놓을까 한다. 헤아려보니 이제 10년이 다 되어간다. 내가 반평생 몸담았던 노동운동에 마침표를 찍고 ‘인생 2막’에 접어든 때가. 그 사연은 이미 다른 글에서 밝힌 바 있고, 사연이란 게 그때그때 바뀌는 게 아니니 그 일부를 여기에 옮겨 싣는다. 참고로, 이 글에서 말하는 ‘개인사의 격변’이란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배임수재 사건(2005년)’에 항의하는, 나를 포함한 일부 사무총국 성원들의 집단사직을 말한다.
아마도 이 글 쓴 사람이 그 차 아무개가 맞나 싶은 사람이 많았을 거다. 노동자계급의 심장부(?) 민주노총에서 일하다가 어느 날 갑자기 ‘쁘띠부르주아’로 변신한 것에 당혹감을 느낄 사람도 있으리라. 나도 그랬으니까. 한 10년 전 일로 기억되는데, 울산에 있는 ㅎ중공업노조 활동가 아무개가 홀연히 전라도 벽촌 어디로 귀농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받은 충격 정도? 하긴 지금이야 흔한 일이 됐으니 그보다는 훨씬 덜 할 것이다.
아무튼 그 차 아무개는 지금 전라북도 완주의 한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다. 어찌어찌 하다 보니 인연이 닿은 곳이다. 2005년이던가. <스코트 니어링 평전>을 읽을 때만 해도 지금 같은 상황은 그야말로 ‘꿈같은 얘기’일 뿐이었다. 하지만 변화라는 건 적극 추구해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우연이나 부정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그 얼마 뒤 ‘개인사의 격변’을 치르고 자신을 재구성하던 어느 순간에 문득 깨달았다. 노동운동가로, 이 도시에 남아 할 일이 없구나! 저 도시로 간들 할 일이 있을까? 그렇다면 신선이나 되어볼까? 그래, 도시를 뜨는 거다. 그 때 떠오른 것은 ‘어머니 흙가슴’이었다. 줄곧 파먹기만 해서 거칠고 야윈 그 곳에 이제는 돌려줘야 한다. 세상을 위해 보시할 일이 남아 있다면 바로 그것이지 싶었다.
아울러 ‘생계를 위한 노동 4시간, 지적활동 4시간, 좋은 사람들과 친교 4시간’이라는 니어링의 구상도 다시 떠올랐다. 그제서야 읽지 못한 채 쌓여만 가는 책들, ‘조직적 글쓰기’라는 명분에 스스로를 가둔 형식주의와 매너리즘 같은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오로지 입시만을 위한 경쟁교육에 찌든 가엾은 아이들도.
‘신선을 꿈꾸는 농사꾼’의 시골살이는 그렇게 시작됐다. 물론 행복감으로 충만한 나날의 연속은 아니다. 그걸 바란 것도 아니다. 또 ‘4-4-4 생활’이 딱 들어맞지도 않는다. 어떤 날은 8-4-0, 모내기를 한 날은 12-0-0이었다. 하지만 또 다른 날엔 4-0-8이나 0-12-0도 있으니 나쁠 건 없다. 가끔은 ‘이런 삶도 있었는데 왜 모르고 살았을까’ 싶을 때도 있다. 하지만 이제 겨우 한 해가 흘렀을 뿐이다. 앞으로 또 어떤 세계가 펼쳐질지 무척 궁금하다. <함께하는 품> 2012. 7
그 동안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처음 올 때와 생각도 적잖이 바뀌었다. 세상에 보시는 잘 하고 있느냐고? 농사가 주업이지만 어쩔 수 없이 옛날에 지어놓은 업에서 자유롭지 못해 이따금 여기저기 불려 다닌다. 시골살이에 만족하냐고? 이게 행복한 삶인지는 더 두고 봐야겠지만, 분명한 건 도시로 되돌아갈 생각은 없다는 거. * 월간 <질라라비> 143호(2015.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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