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13. 13:48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올해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한 해를 잘 매듭짓자는 핑계로 이런저런 자리가 이어지면서 마음이 들뜰 때다. 게다가 농사꾼한테는 가장 한가로운, 이름 하여 ‘농한기’ 아니던가. 거리낄 것 없이 넘쳐나는 여유를 한껏 누려도 좋은 시절.
하지만 이번 겨울에는 그리 녹록치가 않다. 여느 해 같으면 온천하가 좁다는 듯 휘젓고 있을 때 아니던가. 지난날의 ‘화려한 여정’을 떠올리자니 그야말로 격세지감이다. 거의 두문불출이라 해야겠다. 도무지 흥이 나지 않으니 어쩌란 말인가.
하기야 딱 한 번 먼 길을 다녀오긴 했지. 그게 지난 주말, 서울이었다. 가슴 설레는 자리였으면 오죽 좋으련만 이름도 낯선 ‘민중총궐기’. 찬바람 부는 시청광장과 종로거리에 발자국을 남기고 온 게 주말여행의 전부였다.
앞뒤 잴 것도 없이 휑하니 다녀온 길. 따라나설 깃발이 있었던 것도 아니요, 구원의 손길을 뻗은 이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라꼴이 저 모양이니 도저히 참고 있을 수가 없었을 뿐이다.
살아갈 일이 몹시도 군색한 요즘이다. 때 아닌 이상고온, 늦장마로 이 고장 특산품인 곶감이 못쓰게 돼 난리가 아니다. 절망감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까지 있었다. 이런 마당에 ‘가공품’이라는 이유로 피해보상을 해주지 않는 건 또 무슨 경우인가.
곶감이야 날씨 탓에 빚어진 천재지변이라 치고. 이번 겨울, 농사짓는 일이 유독 버겁게 느껴진다. 지난해까지도 미납금은 11월을 넘기지 않았더랬다. 그러나 논 임대료며, 농기계 삯, 농자재 값 따위, 독촉전화를 받고서야 간신히 넣고 있다. 통장에 잔고가 쌓일 틈이 없다. 여느 해처럼 구슬땀을 흘렸고, 날씨도 도와줘 대풍을 이뤘다. 그런데 왜 이리 쪼들리는가.
다 잘 못된 농정 탓이다. 진즉에 공급과잉이 예상됐음에도 밥쌀수입을 강행했다. 뒤늦게야, 그것도 남아도는 물량의 절반만 시장격리 조치를 내리는 바람에 쌀값은 지금도 내리막길이다. ‘직불금’을 들먹이는데, 실상을 모르거나 알면서도 혹세무민하는 짓이다.
어디 쌀뿐인가. 여야정치권이 손잡고 한중FTA를 비준처리 했다. 이제 무슨 농사를 지어먹을지 막막하다고 한숨이다. 농민을 제물 삼아 맺은 협정이니 그 핏값을 내놓는 건 지당한 일. 그러나 ‘무역이득 공유제’는 오직 자본의 선의에 기대는 ‘농어촌 상생기금’으로 결말이 났다. 농민 생존권을 저당 잡아 이득을 취한 자들한테 자선을 구걸하라니 이게 당최 무슨 경우인가 말이다. 오죽했으면 칠순 농민까지 나섰을까. 그러나 정권은 살인적인 물대포 세례로 답했고, 백남기 옹은 아직도 사경을 헤매고 있다.
이 땅의 실질적 지배자인 한 줌 재벌과 거기에 매인 자산계층을 챙겨주는 게 국가의 정책목표다. 그것을 위해서라면 농민은 물론이고, 이 사회 절대다수를 이루는 노동자 생존권도 안중에 없다. 가뜩이나 삶이 버겁고, 입지가 불안한 이들이다. 이런 마당에 노동자를 더 쉽게 해고할 수 있게, 비정규직을 더 늘리는 쪽으로 관련법을 뜯어고치려 한다. 노동자들이 들고 일어선 건 당연하다. 그런데 민주노총 대표를 잡아가두고, ‘소요죄’를 묻겠단다.
요컨대 근로대중의 삶은 도탄에 빠져 있고, 국정은 엉망진창이다. 온 나라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건 당연하다. 국정교과서니, 테러방지법이니 여론을 갈라 치는 수법으로 잘도 빠져나가고 있다만 한 번 폭발하면 걷잡을 수 없을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농한기가 무색한 잔인한 시절, 하루 빨리 그 끝자락을 보고 싶다. 월간 <완두콩> 2015년 12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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