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4. 18:00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농한기로 접어든지 달포가 지났다. 하지만 몸과 마음은 전혀 한가롭지 못하다.
무능하고 부패한 최고권력자의 뻔뻔한 버티기로 ‘국력’은 물론이요 내 보잘 것 없는 기력도 허비하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선 이미 지난 호에서 다룬 바 있다. 거기에 더 보태거나 뺄 것이 없다. 스스로 권좌에서 내려와야 마땅하다. 그럼에도 끝까지 버틴다면 끌어내리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금까지 드러난 부패구조와 거대자본 지배체제를 혁파하는 대장정에 나서야 하는 것이다. 갈 길이 멀다.
그런데 박근혜와 재벌체제 말고도 이 고장에는 퇴출시켜야 할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비봉면에 들어서 있는 초대형 돼지농장이다.
이 농장은 최대 1만2천 마리까지 키울 수 있어 그 규모만으로도 악명 높은 ‘돼지똥 냄새’를 막기 어렵다. 게다가 과거 농장 운영자들은 여러 차례 축산폐수를 천호천에 그냥 흘려보내는 만행을 저질렀다. 주민들은 창문도 열지 못하는 악취에 시달렸고, 천호천은 목숨붙이가 살지 못하는 죽은 내가 되었고, 식수로 쓰는 지하수마저 오염됐다. 이에 격분한 주민들이 대책위를 꾸려 거세게 반발하고, 완주군도 분뇨배출시설 설치허가 취소처분을 내리면서 농장은 지난 5년 남짓 휴면상태로 지나왔다. 그 사이 돼지똥 냄새가 사라졌음은 물론이요 수달을 봤다는 사람이 있을 만큼 하천생태계도 되살아났다.
그러나 지역주민의 삶과 자연생태는 다시 위기를 맞았다. 지난해 4월 이 농장을 인수한 농축산재벌 이지바이오가 재가동을 꾀하고 있는 탓이다. 얼마 전에는 축산업 허가도 나지 않은 상태에서 어미돼지 14마리를 농장에 밀반입해 이 고장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주민들이 곧바로 농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지탄여론이 들끓자 회사 쪽은 보름 만에 돼지를 빼내고, 대책위 관계자를 상대로 낸 모든 사법제소를 취하했다. 그러나 돼지를 사육하겠다는 뜻을 접지는 않았다. 지역주민의 의견을 수렴해 설비를 개선한 뒤 농장을 가동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지역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농장 가동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대다수 주민 또한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아무리 최신설비를 갖춘다 하더라도 돼지똥 냄새를 근원적으로 막기는 힘들다. 게다가 제대로 하려면 수백억이 든다는 설치비용도 비용이지만 1만 마리가 계속 쏟아내는 분뇨를 처리하는 비용 또한 엄청나다고 한다. 고기 값이 떨어져 수지가 맞지 않는 상황이 되면 설비가동을 멈추고 몰래 흘려버리는 유혹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다. 게다가 농장 바로 앞에는 천호천이 흐른다. 과거에도 그랬다. 이 곳에 터 잡고 살면서 농장의 횡포에 시달려온 주민들이 산 증인이다.
주민들만 피해를 보는 게 아니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대기업의 축산업 확장과 시장잠식은 축산농가의 생존을 위협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지바이오를 비롯한 양돈대기업들은 지난 2013년 3월 ‘전업농과 상생하기 위해 사육두수를 현재상태에서 늘리지 않기로’ 한돈협회와 협약을 맺은 바 있다. 하지만 이들 축산자본은 약속을 헌신짝처럼 뒤집고 잇따라 농장을 매입하고 사육두수를 늘려왔던 것이다. 그러니 이 지역은 물론이요, 전국의 축산농가가 비봉농장 퇴출을 촉구하고 나선 것이다.
이렇게 봤을 때 이지바이오가 거센 반대여론을 뚫고 비봉농장을 돌리기는 쉽지 않거니와 설령 가동에 들어간다 해도 두고두고 골칫거리가 될 게 뻔하다. 다행히도 완주군이 당장이라도 농장을 매입할 의사가 있다고 하니 때를 놓치지 않길 바란다. 그것이 상생하는 길이다. 월간 <완두콩> 12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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