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2. 12. 19:58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이런 변이 있나. 오래전부터 별러 오던 이 동네 정월대보름 잔치가 취소되었다.
갑자기 터진 구제역 여파다. ‘이동중지명령’이 내려졌고, 전라북도 지역에는 우제류(발굽이 짝수인 동물) 가축 반출도 금지됐다고 한다. 이에 따라 행정기관에서는 사람이 많이 모이는 행사를 자제해달라는 권고를 해왔다. 이에 따라 예정됐던 대보름 행사가 하나 둘 취소됐고, 끝까지 눈치를 보던 우리도 눈물을 머금고 그 대열에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하여 휘영청 대보름 달빛과 타오르는 달집의 장관, 흥겨운 놀이판으로 넘실대려던 이 꼭지는 갑자기 고요 속에 파묻히게 되었다. 아쉽다.
사실 올해 대보름 잔치는 어느 해보다 판이 커질 참이었다. 우리 벼농사모임 뿐 아니라 토종씨앗모임이 함께 잔치를 준비했고, 어우마을 청년모임과 마을 이장, 부녀회까지 함께 준비팀을 꾸렸던 터다. 그러니 아쉬움이 더 클 수밖에.
내가 보기에 이 변고는 하늘을 원망할 천재지변이 결코 아니다. 인간의 욕심이 빚어낸 자업자득이다. 고기를 향한 끝없는 욕망.
잘 알다시피 구제역은 가축 밀집사육방식인 공장식 축산에서 비롯된 재앙이다. 열악한 사육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은 가축은 면역력이 떨어지고, 바이러스 질병에 걸리기 쉽다고 한다. 게다가 공장식 사육 환경에서는 일단 병이 생기면 그 피해가 급격히, 그리고 대규모로 커질 수밖에 없다. 공장식 축산은 이렇듯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의 생명과 건강, 나아가 자연생태를 해치게 된다. 결국 사육규모를 줄이는 한편 지속가능한 건강한 축산환경을 갖추는 길만이 해법이다.
그러나 사정은 나빠져만 간다. 경제성장으로 소비여력이 커지면 식생활에서는 흔히 육식이 늘어난다. 우리나라만 해도 지난 1970년에 견줘 육류소비가 9배나 늘었다고 한다. 당연히 가축 사육두수는 늘어만 가고, 품목별 농업소득에서도 축산부문이 식량부문을 제쳤다. 그리하여 사람이 행복해지기만 하면 오죽 좋겠는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가축이 내뿜는 매탄은 기후변화(온난화)를 부추기는 대표적인 온실가스다. 게다가 고기를 생산하려면 그보다 9~20배에 이르는 사료(식량작물)가 든다. 1초에 다섯 명이 굶어죽고, 기아인구가 10억에 이르는 세계의 식량사정을 생각하면 육식은 심각한 윤리적 고민도 안겨준다.
나아가 공장식 축산이 빚어내는 환경오염과 생태파괴도 심각한 수준이다. 당장 이 고장만 해도 농축산재벌 이지바이오의 대규모 돼지농장 재가동 움직임으로 갈등을 빚고 있지 않은가. 이래저래 고기 소비를 줄이지 않고서는 답이 없다. 나는 그렇게 믿으며 육식을 끊은 지 이제 10년을 지나고 있다.
그러나 고기를 향한 욕망은 역시 말리기 힘든 모양이다. 어제는 우리 집 짓느라 애쓰고 있는 목수들의 노고를 위로하고 기력을 보충한답시고 쇠고기를 한 턱 냈고, 오늘 점심에는 대보름을 맞아 동네 어르신들 대접한답시고 마을청년들이 소머리국밥을 마련했다. 그 먹는 모습을 곁에서 우두커니 지켜만 보는 내 신세가 처량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우습기도 하고 그렇다.
이제 다시 일어설 시간이다. 예정대로 대보름잔치가 진행됐다면 같은 시각에 열리는 박근혜 퇴진 촉구 촛불집회에 가지 못할 뻔했다.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대보름잔치가 취소되는 바람에 촛불개근을 이어갈 수 있게 됐으니.월간 <완두콩> 2017년 2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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