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4. 1. 19:30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희망에 들떠도 좋을 봄날이 흐르고 있다.
박근혜는 탄핵소추가 인용돼 파면되었고, 엊그제는 구치소에 구속 수감됐다. 이로써 박정희에서 시작해 박근혜로 이어지던 잔혹한 ‘겨울공화국’은 마침내 막을 내렸다. 한 마디로 사필귀정(事必歸正)이다. 불의한 권력은 무너지게 돼 있고, 범죄자는 반드시 벌을 받는다는 진리가 구현된 것이다. 더욱이 광장에 모인 사람들 스스로 이뤄낸 결실이다. 광장에서 목 놓아 외쳤던 염원이 하나하나 그대로 실현되었다. 그것만으로 나는 목이 멘다. 우리 현대사에서 ‘인민대중’이 이렇듯 확실한 승리를 거머쥔 적이 있었던가.
사실 “면민들이 간다!”며 고산농협 앞에서 상경투쟁 전세버스에 몸을 실을 때만 해도 상황이 이리 펼쳐질 줄은 확신하지 못했다. 그저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우리는 피로와 추위를 견뎌내며 뚜벅뚜벅 걸어왔고 끝내 이루어냈다.
한낱 농사꾼에 지나지 않지만 나는 이 ‘촛불대혁명’을 온전히 완성하는 일이 우리의 소명임을 마음속에 새긴다. 더는 정치적 반동으로 역사가 후퇴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단지 ‘누구에게 정권을 줄 것인가’가 아니라 현대사의 질곡이 되었던 묵은 과제를 풀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나아가 우리사회에 좀 더 급진적인 변화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한다.
그렇게 희망의 꽃이 피어나는 봄, 들녘은 어느새 푸른빛으로 물들고 있다. 농사꾼을 부르고 있는 것이다.
쌀 전업농인 나로서는 볍씨를 담그려면 아직도 달포를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갈 길은 바쁘다. 그새 정치사회 현안에 기울어 있던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벌려 놓았던 일도 잘 마무리해야 한다. 석 달 동안 매달려온 집짓기는 이제 다 끝났고 가구만 짜 넣으면 된다. 농사 시작 전에 이사하려면 서둘러야 한다. 새 보금자리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부풀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대가도 치러야 하니 기대 반 걱정 반이라 할 수 있다.
농사 쪽을 보면 올해는 경작면적이 좀 줄어들 것 같다. 지난해까지 빌려 짓던 논 가운데 일부를 다른 분에게 넘겼는데 새로 늘어난 논은 아직 없기 때문이다. 많이 줄어드는 건 아니어서 큰 변화는 없을 듯하다. 농사 말고도 해야 할 일, 하고픈 일이 많으니 어떤 면에서는 나쁠 것도 없다.
이번에는 기필코 트랙터를 장만하려 했는데 집짓는 비용이 늘어나는 바람에 올해도 어려울 것 같다. 어찌어찌 또 한 해 견뎌내는 수밖에.
올해 농사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내가 ‘벼농사 선생’ 노릇을 하게 됐다는 점이다. 완주군 농업기술센터에서 하는 귀농연수생 현장실습 프로그램(멘토링)에서 ‘유기농 벼농사’ 분야의 선도농가로 뽑혔기 때문이다. 연수생(멘티)인 호철 씨는 이곳에 내려온 지 아직 1년이 채 안 되었다. 도시에 살 때는 음악활동을 해왔는데, 여기 내려온 뒤로는 농사에 뜻을 두고 도전을 시작한 것이다. 내 도움이 하루 빨리 시골살이에 적응하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며칠 뒤에는 벚꽃도 꽃망울을 터뜨리겠지. 그러고 보니 아직 봄나들이도 못 했고, 꽃구경도 어려울 듯하다. 그래도 ‘희망의 꽃’이 만발한 이 봄이 나는 사랑스럽다. 월간 <완두콩> 2017년 4월호 칼럼
'누리에 말걸기 > <농촌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낭만파 농부'의 집들이 (0) | 2017.06.04 |
---|---|
5월, 숨이 차다 (0) | 2017.05.01 |
나를 밀고 가는 세 가지 (0) | 2017.03.06 |
변고 (0) | 2017.02.12 |
정유년, 벌써부터 숨가빠 (0) | 2017.01.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