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3. 6. 21:46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어느 순간 고개를 들어보니 거기 봄이 와 있더라.
이번 겨울은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지금 드는 느낌이 그렇다는 얘기다. 여느 해 같았으면 느긋하게 농한기를 누렸을 텐데, 이번엔 사정이 달라 내내 종종거려야 했다.
무엇보다 집짓는 일에 매여 한겨울을 공사장에서 지내왔다. 바쁠 것 없는 농한기에 공사가 진행돼 그나마 다행이라 해야 할지. 하는 일이라야 이른바 ‘개잡부’ 노릇으로 온갖 허드렛일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여간해선 해보기 어렵다는 ‘내 집 짓기’를, 그것도 손수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는 건 보통 귀한 경험이 아니지 싶다. 그 동안 우여곡절을 겪었지만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들어선 지금은 그게 다 순식간으로 여겨진다.
지난겨울을 달군 또 하나의 이슈는 박근혜 퇴진 싸움. 하는 일이라야 매주 토요일 촛불집회에 함께 하는 게 전부지만, 돌아보니 지금껏 단 한 번의 결석 없이 ‘개근’을 이어가고 있어 스스로 대견해진다. 집회시간이 다가오면 혼자 공사장에서 빠져나와 전주시내로 향하곤 했는데, 남아서 일할 목수들을 생각하면 등짝이 화끈거렸다. 두 차례 열린 ‘서울집중집회’ 때도 상경버스에 무거운 몸과 마음을 실었더랬다. 탄핵심판이 임박한 지금, 그 결말이 아름답기를 바랄 뿐이다.
그렇게 석 달을 보내고 나니 농사철이 눈앞이다. 그 새도 바삐 움직였으니 올해는 새삼스레 몸을 풀 일도 없게 됐다. 더욱이 벼농사모임에서 진행한 ‘농한기강좌’도 착착 진행돼 막바지에 이르렀다. 그 동안 전문가와 선배 농사꾼을 모시고 유기농 벼농사, 농업농촌의 현실과 전망, 여성농민으로 살아가기, 토종작물과 자연농, 유기농 채소농사, 농촌에서 손수 건강 돌보기 등을 공부해왔다. 이제 농업제도와 이 고장 고산의 역사를 다루면 강좌는 모두 마무리된다.
바로 그 시점에서, 애초 계획했던 대로 우리는 봄 소풍을 겸한 수련회를 다녀왔다. 바로 엊그제, 변산 바닷가였다.
지역농업 전문가를 불러 ‘집락영농(공동체농사)’를 주제로 한 강의를 들었다. 이어 늦은 밤까지 벼농사모임의 발전방안과 진로를 놓고 열띤 대화를 나눴다. 저마다 놓인 상황이 다르고, 농사계획도 아직 세우기 전이라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래도 서로를 더 많이 알 수 있었고, 농사현실과 전망도 풍부하게 이해할 수 있었으니 비관할 일은 아니지 싶다. 모임의 체계야 여건만 성숙되면 언제라도 갖출 수 있어 조바심 낼 것도 없다. 사실 모임을 가동한지 3년째 접어들고 있지만 1박을 하는 수련회는 이번이 처음이다. 그만큼 우리는 천천히 가고 있는 것이다.
이튿날 아침엔 다들 채석강 해변으로 나갔다. 바로 거기에 봄이 와 있었다. 새봄의 바닷바람이 콧속을 가지렸다. 쏴~ 밀려드는 파도소리에 쌓인 시름을 털어내고, 끼룩끼룩~ 펄떡이는 기러기의 저공비행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는다. 5리에 걸쳐 펼쳐진 층암절벽은 영겁의 세월을 견뎌왔겠지. 사람 사는 일, 급할 게 무엇인가.
다시 삶의 현장이다. 이 글을 마무리하는 대로 나는 또 집짓는 공사현장으로 나간다. 다음 주말에도 나는 투쟁의 현장에 서 있을 것이다. 남은 두 차례 농한기강좌를 진행하고 나면 농사현장에 나서게 된다.
3월, 비로소 시작되는 달. 지금 나를 밀고 가는 이 세 가지가 잘 갈무리되고 아름다운 새 세계가 펼쳐지기를. 월간 <완두콩> 2017년 2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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