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7. 3. 15:55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대신 김매기 고된 노동에 구슬땀이 알알이 맺히는 시절. 논배미마다 논풀은 쑥쑥 올라오고, 그것을 바라보는 농부는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간다.
간밤에 제법 비가 내려 논배미를 한 바퀴 둘러보고 오는 길. 좀 심란하다. 장마가 시작돼 해갈이 되는 건 다행이지만, 그 사이 무성해진 풀을 맬 일이 걱정이다.
어떤 곳처럼 논바닥이 갈라지고 모가 타죽는 지경은 아니지만 이 고장 또한 오랜 가뭄에 애를 태워왔다. 관정을 파도 물이 안 나와 오직 하늘에 기대 벼농사를 지어왔던 논은 아예 모내기를 못하는 초유의 사태를 맞기도 했다. 웬만큼 관개시설을 갖췄다 하더라도 방류를 제한하는 바람에 곳곳에서 ‘물꼬싸움’이 벌어지는 등 분위기도 거칠어졌다.
우리 논 다섯 배미가 들어선 안밤실 분토저수지는 지금 열흘 가까이 수문에 자물쇠가 채워져 있다. 가뭄으로 수위가 바닥을 기면서 빚어진 일이다. 며칠 전부터 비가 내려 수위가 좀 올라갔지만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수문은 여적 굳게 잠겨 있다. 그 바람에 저수지 물에 기대고 있는 논배미는 그예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논바닥이 드러난다는 것은 피를 비롯한 호기성 잡초가 싹을 틔워 자라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나아가 잡초를 뜯어먹으라고 풀어 넣은 왕우렁이가 제구실을 못하는 환경이기도 하다. 그러는 사이 잡초가 부쩍부쩍 자라 억세지면 나중에 물을 깊이 대더라도 왕우렁이가 뜯어먹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어쩔 수 없이 손으로 풀을 매줘야 한다. 그것이 김매기다. 올해로 6년째, 외곬으로 유기농을 고집하다보니 이제는 “사서 고생허덜 말고 그냥 제초제 뿌리시게!” 같은 얘기를 하는 이는 없어졌지만 ‘그 놈의 가뭄 탓에’ 괜히 고생한다는 분까지 풀리지는 않는다.
해마다 7월이 되면 “올해는 김매느라 얼마나 고생할지” 신경이 곤두서는 건 그 때문이다. 자연 지난 기록을 떠들어보게 되는데 재작년은 6시간 만에 싱겁게 끝냈고, 지난해엔 보름 남짓 욕을 본 것 같다. 올해는? 그저께 시험 삼아 샘골 두 배미를 매 봤는데, 잡초가 많이 올라오지 않았고 아직은 어린 편이라 왕우렁이의 활약을 기다려볼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하지만 어제 김매기를 시작한 문제의 안밤실 배미를 떠올리면 숨이 막힌다. 아침나절, 호철 씨는 맨손으로 피를 뽑고, 나는 ‘싹쓸이호미’라는 농기구로 잡초를 흙속에 파묻는 중경제초를 했지만 중과부적. 뙤약볕까지 내리쬐는 바람에 기진맥진 하여 점심을 핑계로 도망치듯 빠져나오고 말았다. 그러니 앞으로 걱정이 한 짐 아니겠나.
김매기. 날씨가 도와주지 않으면 도저히 피해갈 수 없는 농사꾼의 숙명 같은 것. 고요한 논배미에 들어서 풀을 매다보면 어느 순간 빠져드는 ‘무아의 경지’를 두고 ‘삼매경’이니 ‘황홀경’이니 스스로를 위로해보기도 하지만 벼농사가 얼마나 고단한지 상징하는 작업이다. 하여 어차피 그렇다면 조바심치지 않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일을 모두 끝내는데 일주일이 걸릴지, 열흘이 걸릴지 해봐야 알겠지만 되는 대로 쉬엄쉬엄, 느긋하게 해가자고.
김매기가 끝난다고 농사가 끝나는 건 아니니까. 곧바로 덧거름도 줘야 하고, 다시 한 번 논두렁 풀도 베어줘야 하고... 나락을 거둬들이는 그날까지 농사일은 꼬리에 꼬리를 물을 것이니 괜히 애태우지 말자고. 보름쯤 지난 이달 중순에는 ‘양력백중놀이’ 판 벌여서 한 박자 쉬어도 가자고. 월간 <완두콩> 2017년 7월호 칼럼
'누리에 말걸기 > <농촌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마지막 방아'를 찧으며 (0) | 2017.09.04 |
---|---|
아, 에어컨... (0) | 2017.08.07 |
'낭만파 농부'의 집들이 (0) | 2017.06.04 |
5월, 숨이 차다 (0) | 2017.05.01 |
'희망의 꽃' 만발한 이 봄 (0) | 2017.04.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