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에어컨...

2017. 8. 7. 11:49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논둑치기 작업이 늘어진 것은 무엇보다도 날씨 탓이 가장 컸다. 가히 미쳤다고 해야 할 날씨, 최고기온이 33도를 웃도는 날이 무려 20일 넘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 오래 살지는 않았지만 난생 처음 꼴이지 싶다. 논둑치기와 거의 겹치는 기간이다. 오전 9시만 넘어도 숨이 턱턱 막히고, 오후 7시가 가깝도록 열기가 식지 않으니 낮에는 엄두도 못 내고, 아침-저녁 한 두 시간을 쪼개는 것도 쉽지 않아 날짜가 길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

 

지난해 8월호 <농촌별곡> 내용이다. 사정은 올해도 마찬가지다. 아니 더 심해졌다. 며칠 째 한낮 기온이 섭씨 35도를 우습게 넘기더니 오늘은 아예 아침 11시에 35도를 기록했다. 그러니 아침이고 저녁이고 아예 논배미에 나가 볼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조금만 움직여도 비 오듯 땀이 쏟아지니 온종일 집안에 틀어박혀 있다. 기상청 예보로는 이달 중순까지 찜통더위가 이어질 거라니 8월이야말로 잔인한 달에 어울릴 듯싶다.


문제는 이게 유난히 무더웠던 그해 여름같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지구온난화, 기후변화라는 되돌리기 힘든 흐름이라는 점이다. 지구가 갑자기 뜨거워지기 시작한 건 100년 전, 다시 말해 전 세계가 산업화로 치달으면서부터다. 그 에너지원으로 석유,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쓰면서 엄청난 온실가스가 배출됐고 그것이 온난화를 불렀다는 게 관련 연구자들의 한결같은 진단이다. 인류 스스로 불러들인 재앙인 셈이다.


국제사회가 그 심각성에 공감하면서 교토의정서를 채택하고, 온실가스 배출을 줄이려 애쓰고 있지만 전망은 그리 밝지 않은 모양이다. 하여 이대로 가다가는 갈수록 뜨거워져 21세기 말에는 평균기온이 3~6.4도 치솟아 대다수 생물체가 멸종하리란 우울한 전망이다. 나아가 기후변화가 차츰차츰 일어나는 게 아니라 언제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이변이 벌어질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낮에도 가슴이 서늘해지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마침내 섭씨 38를 찍었지만 에어컨도 틀지 않는 방에서 꾸역꾸역 원고를 채워가고 있다. 잘 알다시피 에어컨은 전기 먹는 하마. 그 전기는 화석연료를 태워 생산했으니 온실가스 배출을 재촉하는 셈이 된다. 또한 실내공간을 식히면서 기기가 엄청난 열을 내뿜으니 바깥 온도는 되레 치솟는다. 나아가 에어컨 냉매는 이산화탄소보다 수천에서 수만 배 강력한 온실가스다. 기후변화를 일으켜 여름을 달궈놓고는 그 더위를 참지 못해 에어컨을 틀어대고, 지구는 더 뜨거워지고.


차마 에어컨을 틀지 못하는 심정은 좀 비감하다. 물론 에어컨을 들여놓지도 않았다. 그래봤자 지구 온도가 0.1도 아니 1 앞에 0이 수십 개 붙을 만큼이나 내려갈까 마는 그렇게라도 가치를 지켜보려는 발버둥이겠지. ‘공장식 축산으로 배출되는 매탄이 이산화탄소보다 20배나 강한 온실가스임을 알고 10년 넘게 채식(페스코)을 해온 것과 같은 맥락이다. 사실 이런 식의 작은 실천이 핵심이 아님은 물론이다. 온실가스를 내뿜는 산업생산이나 개발을 통해 이득을 얻은 기업에 가장 큰 책임이 있고, 오염방지 비용을 부담해야 마땅하다. 나아가 국가정책이나 국제협력을 통해 온실가스 규제-방지체제를 서둘러 갖출 일이다.


그래도 나는 에어컨 없이 뜨거운 여름을 견뎌보려 한다. 물론 실내 사무공간에서 일하는 처지였다면 꿈도 꾸기 어려웠을 거다. 너무 더워서 논배미에 나가보지도 못하고 집안에 홀로 틀어박힌 농사꾼이니 그나마 엄두를 내보는 거 아니겠나.


수은주는 여전히 37도를 가리키고, 선풍기는 뜨거운 바람을 토해내는 끔찍한 저녁시간이 흐르고 있다월간 <완두콩> 2017년 8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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