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2. 12:59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전략적 잡초육성지구’라는 이상한 이름을 붙인 어우 배미 김을 매고 돌아오는 길이다. 올해 김매기는 이것으로 실상 끝났다. 나흘 만이고 실제 일한 시간으로 치면 모두 16시간. 한 두 시간 남짓 걸릴 안밤실 배미가 남아 있지만 갑자기 억수비가 쏟아지는 통에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편으로는 혹시 ‘김매기 체험’에 나설 이가 있을지 몰라 일부러 남겨둔 점도 있긴 하다.
어제는 “김매기 한 번 해보지 않고 어디 가서 벼농사 짓네 하지 마라”는 내 얘기에 넘어간 병수 형님이 두 시간 남짓 함께 김을 맸다. 4년 전 귀농해 다섯 마지기 논농사를 짓고 있는데, 어찌나 물 관리를 잘했는지 논풀이 전혀 올라오지 않아 지금껏 김매기를 한 번도 해 본 적 없노라 했다. 무슨 체스판 말 옮기 듯 감질나게 풀을 뽑다가 자기보다 세 배도 더 빠른 내 손놀림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사실 제초제가 눈부시게(?) 발달한 이 시대에 김매기가 웬말이냐 싶을 것이다. 하지만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겠다는 생태(유기)농법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화학’의 탈을 쓴 농약과 비료에서 벗어나고자 애써온 역사가 ‘오리 농법’ ‘논생물다양성 농법’ 등에 담겨 있다. 친환경 제초는 이제 ‘우렁이 농법’으로 일반화되는 추세다. 원산지가 열대지방인 왕우렁이는 온갖 풀을 잘 뜯어먹는 속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논물 수위를 높여 왕우렁이가 먹이활동을 잘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핵심. 그렇지 못하면 논풀이 올라오는 걸 어쩌지 못한다. 우렁이가 처치하지 못한 풀은 사람 손으로 없애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김매기다.
김매기는 사실 고단한 전통 논농사의 상징이었다. 왕우렁이도 없고 물대기도 시원치 않던 시절, 한여름 뙤약볕 아래 등이 익어가도록 세 차례나 거친 호미질(세벌매기)을 해야 했을 옛 농부의 신음이 귓속을 맴돈다. 지금은 견줄 수 없을 만큼 나아졌지만 그래도 김매기는 김매기다. 올해는 나흘-16시간 걸렸지만 보름 넘게 걸린 해도 있고, 단 6시간 만에 끝난 해도 있다. 이렇듯 꼼꼼한 시간계산에는 그 고단한 노동을 조금이라도 덜 하고픈 염원이 담겨 있다.
그러나 김매기는 한편으로 ‘황홀경’을 맛보게 해주기도 한다. 극과 극이 통한다고, 극단의 고통에 겨워 찾아오는 경지라고 할까. 처음부터 그렇지는 않다. 김을 매는 손놀림에 익숙해진 다음 얘기다. 논바닥에 들어서면서부터 농부는 물속에 갇히는 신세가 된다. 손은 손대로 놀리며 이런저런 생각을 떠올리다 보면 어느 순간 ‘삼매경’에 빠지고 때로는 ‘무아지경’에 이르게 된다. 몇 번씩 우주를 세웠다가 허물 수 있는 절대사유의 세계!
물론 ‘공상’만 들어서는 건 아닐 것이다. 물속에 갇혀 있다는 고립감은 안정감으로 이어져 생각이 깊고 섬세해진다고 할까. 나만 해도 몇 해 전에 낸 책 <10대와 통하는 노동인권 이야기>를 8할은 김매기 하면서 썼다. 벼농사를 시작한 첫해였는데, 왕우렁이를 넣기만 하면 지들이 알아서 논풀을 잡는 줄 알고 물관리를 전혀 못했더니 네 마지기 논이 ‘피바다’가 되었더랬다. 그 풀을 잡겠다고 한 달 보름, 45일 동안이나 매달렸다. 여리디 여리던 풀줄기가 김매기가 끝날 즈음에는 두 손으로 움켜쥐고 줄다리기 하듯 당겨야 뽑아질 만큼 억세져 있었다. 몸은 고달팠지만 착 가라앉은 사색 환경 덕분에 김매기 현장에서 책 내용을 구상하거나 손보고, 표현을 가다듬을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
그러니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이 되면 김매기 그 황홀경에 가슴이 설레는 거겠지. 하여 나는 ‘은쟁반에 하이얀 모시수건’ 대신, 김매기를 겪어보지 못한 이들을 위하여 한 두 시간 거리의 ‘잡초구역’을 마련해 둔 것이다. 월간 <완두콩> 2018년 7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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