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어컨 vs 얼음주머니

2018. 8. 6. 20:12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찜통더위 잘 이겨내시기 바랍니다. 무더운 날씨에 쌀의 신선도 유지를 위해 미리 주문을 받아 찧어 보내드리는 <갓찧은 쌀 서비스>. 2차 주문 받습니다. 이번 도정예정일은 80. 좋은 쌀 드시고 건강하세요~”

 

단골 소비자에 보낸 문자메시지, 예정대로 방아를 찧었다. 무더위 탓인지 예전보다 주문량이 줄었지만 어쨌거나 곧바로 밀봉포장을 해야 한다. 그래야 쌀의 산화(변질)를 최대한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정미소야 덜 더운 아침나절에 방아를 찧는 게 당연하고, 그걸 실어오니 한낮이다. 한 달 째 찜통더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작업을 늦출 순 없다.


실어온 마대 쌀자루를 창고로 들어 옮긴 뒤, 진공포장지에 10키로 단위로 덜어 밀봉기계로 봉하는 작업이다. 버겁고, 작업속도도 나지 않는다. 그나마 마침 불어오는 바람을 쐬어가며 쉬엄쉬엄 하노라니 일을 끝마치는 데 한나절이나 걸렸다.


쌀 얘기로 시작했지만 역시 문제는 날씨다. 온 나라를 찜통 속에 집어넣은 듯 그야말로 푹푹 쪄대고 있다. 폭염경보는 일상이 된 지 오래고, 최고기온을 비롯해 더위와 관련한 역대기록이 속속 깨지고 있다. 유사 이래 최악의 더위다.


그 핵심에는 물론 기후변화가 자리하고 있다. 해마다 이 즈음이면 입에 거품을 물고 부르대는 사안이다. 무더위가 너무 혹독해선지 올해 들어서는 일반여론도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눈치다. 하지만 백년 남짓 내뿜어온 온실가스가 오존층을 야금야금 파먹은 상태라 단기대책이라는 게 있을 수 없다. 하여 다시 이를 들먹여봤자 입만 아플 것이니 그만 두기로 하자.


어쨌거나 날씨가 미쳐 돌아가니 농사일은 엄두도 못 낸다. 하긴 벼농사만 짓는 나로서는 할 일이 많지 않은 때다. 논배미 물관리와 논두렁 풀베기가 전부라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마저 쉽지가 않다. 한낮부터 저녁까지는 기온이 너무 높아 밖으로 나가기가 무섭다. 일을 할 수 있는 시간은 이른 아침이 고작인데 무더위에 잠을 설치고 나면 그마저 쉽지가 않다. 예초기를 30분만 돌려도 몸뚱이는 금세 물먹은 솜이 돼버리니 말이다.


할 수 있는 일이란 그저 온종일 집안에 틀어 박혀 인터넷 서핑을 하거나 책을 보는 것이다. 그렇게 가만히있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물론 에어컨을 켜면 무더위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다. 에어컨, 참 고마운 물건이다. 그래서 에어컨 발명가에겐 노벨의학상(온열질환 예방)이나 노벨평화상(불쾌지수 감소로 온갖 갈등과 충돌 예방)을 줘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실제로 사상초유의 무더위에 사망자가 속출한 이웃 일본에서는 정부가 나서 참지 말고 에어컨을 트시라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이다. 우리나라도 에어컨 가동에 따른 전기요금 부담을 덜기 위한 방안을 놓고 논란이 한창이다. 우선 사람이 살고 봐야 하니 당연히 그래야 한다. 복사열을 뿜어내는 아스팔트와 콘크리트 숲에 갇힌 도시에서 에어컨 아니고는 살인적 더위를 어찌 버텨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난해 8월호 칼럼에서도 얘기했듯 에어컨이 기후에 미치는 부메랑 효과도 심각하다. 하여 시골에 살면서, 그것도 집안에 가만히있으면서 에어컨을 틀기가 꺼림칙한 것이다. 손님이라도 들이닥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드는 게 사실이지만, 아직은 어름주머니와 선풍기, 시원한 물로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그런 내가 대견스럽기도 하다. 월간 <완두콩> 2018년 8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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