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2. 31. 16:40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새해가 밝았다고 하는데 그것 말고는 별 볼일 없는 시절이다. 더구나 이번 겨울은 눈다운 눈도 내리지 않아 창밖 풍경도 데면데면한 그런 나날이 이어지고 있다. 겨울, 그것도 시골의 겨울이라는 게 원래 그렇긴 하다.
그러고 보니 이 꼭지 이름 ‘농촌별곡’이 새삼 눈에 들어온다. 그래 ‘촌’이지. 촌스럽다, 촌티난다 따위 깔보는 어감이 마땅찮아 같은 값이면 순우리말 ‘시골’을 골라 쓴다. 흑백사진 같은 예스런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는 말이다. 사람마다 떠올리는 실제 이미지는 서로 다르다. 어떤 이는 눈 덮인 두메산골이, 또 다른 이는 파도가 넘실대는 포구가 어른대겠지. 고산지역은 중산간, 그다지 넓지 않은 논밭이 펼쳐진 시골이다. 여기저기 뒤지고 아무리 따져 봐도 그걸 가리키는 낱말은 ‘농촌’ 말고 없다.
어쨌거나 그 농촌에서 펼쳐지는 삶을 읊으라는 농촌별곡이렷다. 그런데 지금은 한겨울. 자연은 온통 겨울잠에 빠져 있고, 사람들 또한 잔뜩 움츠러들었다. 그러니 얘깃거리가 몹시 궁할 수밖에 없다.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둘러보라 할지 모르겠다.
세상이 바뀌어 겨울철이 와도 쉬어가지 않는 농업인이 더 많긴 하다. 소, 돼지, 닭이 겨울잠을 잘 리 없고, 시설채소는 농사철이 따로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자세히 알 길 없는 그 쪽 이야기를 대신 전할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그 점에서 다행인 건 시골에 산다 해서 다 농사를 짓는 건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율로만 따지면 2,3차 산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외려 더 많을 것이다. 하여 읍내 미소시장 상인들이 나서 성탄절 맞이 공연과 장터를 열고 떡국을 나눴다. 공연에는 틈틈이 솜씨를 다듬어온 동네 이웃들이 출연해 분위기를 후끈 달궈놓았다. 몇몇 사람은 때를 놓치지 않고 술판을 벌여 소통마당을 열기도 했다. 풍요롭고 행복한 시골살이란 누가 만들어주는 게 아니라 이렇듯 스스로 가꿔가는 것이다. 요즘 유행하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이런 걸 두고 하는 얘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알다시피 나는 쌀 전업농이다. 나락을 거둬들이고 한 해 농사가 끝나고 나면 이듬해 농사가 시작될 때까지는 쉬어 간다. 세월을 거슬러 느긋하게 농한기를 보내는 보기 드문 경우라 하겠다. 이번에는 사정이 생겨 ‘땀나는 겨울’을 보내야지 싶었는데 아직은 ‘동안거’ 양상이다. 그저 내키는 대로, 손에 닿는 대로 책을 집어 들고 있다.
하지만 이런 태평한 세월, 농한기가 언제까지고 계속될 순 없는 일이다. 땀낼 일이 생겨서가 아니라 이제 슬슬 농사를 준비할 때가 된 것이다. 몸을 풀려면 아직 멀었고 지금부터 마음을 다잡아야 한다.
고산권 벼농사두레 연찬회(수련회). 새해 첫주부터 머리를 맞대기로 했다. 생태농법에 도움 되는 미생물이 깃든 바닷물을 뜨고, 갯바람도 쐴 겸 겨울바다로 간다. 연찬회 핵심의제는 ‘농한기 강좌를 어떻게 꾸릴 것인가’. 벼농사두레는 그 동안 농한기마다 강좌를 열어왔다. 주로 벼농사 관련 주제를 다뤄왔는데, 네 번째를 맞는 올해는 굳이 농사로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관심사를 다루기로 했다.
실은 막판에 원고마감이 한 주 당겨지는 바람에 연찬회 얘기를 자세히 다룰 수 없어 무척 아쉽다. 하긴 세상만사 새옹지마라 했으니 두고 볼 일이다. 월간 <완두콩> 2019년 1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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