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 5. 08:41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처서 지나 9월로 접어드니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이 선선하다. 열흘 전만 해도 열흘 전만 해도 푹푹 쪄대던 날씨다. 기후변화를 생각하면 앞으로도 이렇듯 세월을 이기는 장사가 없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어쨌거나 그 찜통더위에 맨몸으로 맞서온 이들은 이제 선선해진 그 자리를 뜨는 게 못내 아쉽기만 하다. ‘이지바이오 돼지농장 재가동을 반대하는 완주사람들’(이지반사)이 8월 한 달 동안 완주군청 들머리에서 벌여온 천막농성을 오늘 마무리한다. 때 아닌 가을장마로 언제 비가 내일지 몰라 출근길 피케팅을 마친 뒤 곧바로 천막을 걷었다. 집채만 한 몽고텐트에 집기류도 적지 않아 해체작업에 장정 네댓이 달라 들었다.
돌아보면 업체쪽이 인허가 신청서를 제출하리란 소식에 부랴부랴 ‘캠핑’이란 이름으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급히 마련된 발대식에는 1백 명이 넘게 몰렸고, 갑자기 내린 장대비 속에서도 집단율동을 펼치는 열기를 내뿜었다. 그만큼 절실했으리라.
절실했던 만큼 천막농성은 예상을 뛰어넘는 성황을 이뤘다. 대형천막부터 필요한 집기들을 동네 톡방에 공지하자마자 삽시간에 마련됐다. 지지-격려방문도 이어져 후원금은 물론 과일과 음료 따위 먹거리도 넘쳐났다. 매일 천막 앞을 지나다니는 어떤 이는 직접 손으로 만 김밥을 건네주기도 했다.
인허가 신청서를 막는 게 목적이었으므로 농성은 군청 출근시간 피케팅으로 시작해 퇴근시간 피케팅으로 끝났다. 주말과 공휴일은 당연히 건너뛰고. 하루에 적게는 열댓, 많으면 마흔에 이르는 사람들이 천막농성장을 지켰다. 연인원으로 따지면 5백 명이 넘는 엄청난 숫자다.
어차피 긴 싸움을 작정하고 나선 길, 조급하거나 무리할 까닭이 없다. 출근길 피케팅을 마치면 둘러 앉아 시원한 음료와 함께 담소를 나눈다. 얘깃거리가 떨어지면 저마다 책을 보거나 나무판에 ‘바위처럼 살자꾸나’를 함께 새기는 서각 삼매경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다가 시간이 되면 군청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먹는다. 한낮의 무더위를 견디기 어려울 때는 번갈아 가며 시원한 민원실 안마기에서 몸을 풀기도 하고.
이지반사 참가단체를 요일별로 나눠 농성당번을 정했는데 한 주에도 몇 차례 씩 농성에 합류하는 이가 적지 않았다. 수요일은 봉산리 다섯 마을이 맡았는데 어찌나 열심인지 다들 감탄해마지 않았다. 심지어 올해 가장 더웠던 날이 하필이면 봉산리 차례였다. 다들 어르신들이 염려가 되어 “오늘은 일찍 끝내고 들어가시라” 했지만 단 1분도 어기지 않고 퇴근피케팅을 완수하는 모범을 보였다.
이따금 캠핑장에 몰려오는 아이들은 싸우는 어른들에게 더할 나위 없는 활력소다. 숟가락 공동육아와 삼우초 아이들. 우두커니 서 있는 어른들과 달리 피켓을 내저으며 연신 “돼지농장 반대한다! 반대한다!”를 외쳐대는 아이들은 제풀에 신이 났다.
그러는 사이 업체쪽은 인허가 신청서를 내지 않았다. 관계자한테 들은 바로는 우리의 공동행동에 부담을 느껴 엄두를 못 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났고 집회신고 기간이 다 찼다. 우리에겐 아직도 힘이 남아돈다. 그러나 쓸데없이 힘을 뺄 필요는 없다. 대기업 이지바이오와 ‘맞짱뜨는’ 싸움에 나서려 잠시 천막을 접기로 했다. 이미 그룹회장 면담을 요청하는 공문을 보낸 상태다.
오늘 저녁엔 그새 참 잘 싸워온 서로를 다독이고 다음 싸움에 나설 의지를 가다듬는 조촐한 문화제가 열린다. 더 큰 싸움, 그윽한 출정. 월간 <완두콩> 2019년 9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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