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 7. 09:41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누가 7월말-8월초 아니랄까봐 연일 푹푹 쪄대고 있다. 논배미 둘러보러 나선 길, 평소에는 한적한 주변 차도가 붐빈다 싶었더니 주말이다. 물어볼 것도 없이 완주 동북부에 있는 계곡을 찾아 나선 피서행렬이다. 사람들 바글거릴 게 뻔한 계곡풍경이 떠올라 저 틈에 낄 엄두가 안 난다. 에어컨 없이 여름나기 3년째, 그나마 산기슭에 집터를 잡아 ‘훌러덩 패션’과 얼음주머니로도 견딜 만 하다. 웬 청승이냐 할지 모르겠다.
지난 주말, 고산읍내 완주미디어센터에서 상영하는 <잡식가족의 딜레마>(감독 황윤)를 봤다. 돼지가 주인공인 다큐멘터리 영화다. 공장식 돈사와 복지농장을 대비해 보여주며 ‘동물기본권’ ‘육식’에 대해 고민거리를 들이민다. 영화가 끝난 뒤에는 ‘황윤 감독과의 대화’도 이어졌는데, 내가 체식주의자(페스코)임을 알고 있는 진행자가 강요하다시피 마이크를 쥐어 주었다.
나는 15년 가까이 육류를 먹지 않고 있는데 이 영화의 주제와는 그 맥락이 약간 다르다. 공장식 축산으로 고기를 ‘대량생산’하는 과정에서 동물들이 내뿜는 매탄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 되는 현실에 항거하는 정치행위인 셈이다. 어쨌든 내가 고기를 먹거나 말거나 갈수록 상황은 심각해지는 듯하다. 지구가 뜨거워지는 현상을 기후‘변화’라 일컬어왔지만 이제 기후‘위기’로 부르자 한다. 이렇게 지구기온이 높아지다가는 머잖아 ‘지구멸망’의 방아쇠를 당기게 된다는 섬뜩한 분석도 나왔다. 하긴 요 몇 해 여름날씨를 보면 숨 막히는 더위 속에서도 자꾸만 소름이 돋는다.
다시 돼지 얘기로 돌아가자면 먼 나라 얘기도, 다른 곳 얘기도 아니고 바로 우리 동네 얘기가 되겠다. 영화에 나오는 복지농장이 아니라 공장식 돈사 문제다. 손꼽히는 농축산재벌 이지바이오가 계열사 부역육종을 통해 지난 2015년 매입한 비봉면 돼지농장. 악취를 뿜어내고, 폐수를 무단방류하는 바람에 10년 가까이 가동이 중단된 이 농장을 재가동하겠다는 것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재가동을 위한 인허가 신청서류를 완주군청에 곧 제출할 모양이다. 인허가라니! 절대 안 될 말이다.
완주군 <가축분뇨 관리 조례>에 따려면 ‘반경 2Km 이내에 5호 이상의 민가가 밀집한 지역’엔 돼지사육을 제한할 수 있다. 지독하기로 유명한 돼지똥 냄새가 미치는 영향권을 감안한 규정이라 하겠다. 그런데 비봉농장 반경 2Km 안에는 5호가 아니라 봉동 둔산리, 백제예술대 아파트단지를 비롯해 2만명 가까운 인구가 밀집돼 있다. 게다가 보통 돈사도 아니고 1만 마리도 넘는 엄청난 규모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농장 재가동은 미친 짓이나 진배없다.
업체쪽도 당연히 “설비를 제대로 갖춰 악취를 저감하겠다”고 강조해왔다. 하지만 업체쪽이 보여온 행보는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업체쪽은 처음엔 지금의 돈사를 개보수하는 시공계획 도면을 제시하며 “이것으로 악취를 확실히 잡을 수 있다”고 강변했다. 그러더니 두 달 만에 태도를 바꿔 “기존돈사 철거 후 신축, 최신 악취저감설비 도입”으로 급선회했다. 개보수만 해도 된다더니! 사실을 말하자면, 아무리 훌륭한 악취저감설비를 갖추더라도 그걸 작동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아울러 거대기업의 양돈산업 잠식으로 이 지역 축산농가의 생존기반이 침해되는 것도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지바이오 돼지농장 재가동을 반대하는 완주사람들(이지반사)’로 모였다. 이 글을 읽고 있을 즈음엔 ‘비봉 돼지농장 인허가 반대’ 천막농성이 벌어지고 있을 것이다. 대규모 대중집회도 열릴 모양이다. 안 그래도 산업폐기물, 고화토 따위로 환경오명 이슈로 어렵게 쌓아온 완주군의 청정이미지가 무너지고 있는 상황이다. 열불이 나서 가만 못 있겠다. 월간 <완두콩> 2019년 8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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