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 6. 10:13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기해년이 가고 경자년이 밝았다. 달력 첫 장을 뜯어내는 그 눈 깜짝할 사이에 한해가 훌쩍 넘어간다. 좀 우습긴 하지만 사람들이 만들어놓은 질서이니 나름의 뜻이 숨어있기도 할 테고, 얘깃거리도 생기는 것이겠지.
돌아보면 다사다난(多事多難)을 넘어 그야말로 파란만장(波瀾萬丈)한 한해였다. 누가 돼지해 아니랄까봐 내내 돼지와 더불어 부대꼈다. 당장 이 ‘농촌별곡’만 하더라도 8월부터 내리 다섯 달을 돼지농장 얘기로 채웠다. 그만큼 돼지농장 재가동 문제가 우리 삶을 짓눌렀다는 얘기가 되겠지.
그래도 일단 ‘해피엔딩’으로 한해를 마무리 하게 돼 다행이다. 완주군이 결국 업체쪽의 돼지사육업 허가신청에 불허가 처분을 내렸다. 첫판 싸움이 우리 주민의 승리로 끝난 것이다. 정말 녹록치 않은 상황이었고, 결코 기대하기 쉽지 않은 결과였다. 10년 가까이 끈질기게 싸워온 봉산리 주민과 전 대책위, 이지반사(이지바이오 돼지농장 재가동을 반대하는 완주사람들)로 뜻과 힘을 모아준 이들이 그 승리의 주역이다. 무어라 고마움을 전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제 1라운드가 끝났을 분이다. 90일이 지나면 불허가 처분이 확정되지만 일이 그렇게 끝날 것 같지는 않다. 업체로서는 행정소송을 통한 사법적 다툼의 여지를 포기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승소할 가능성이 낮더라도 일단 소송을 제기해 어떤 ‘지렛대’로 활용하려 할 것이다. 어쨌거나 그렇다 치자.
그래도 나는 업체쪽이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현명한 판단을 내리기를 호소한다. 무엇보다 이 곳은 돼지를, 그것도 어머어마한 규모로 사육할 만한 입지가 결코 아니다. 그만큼 승소할 가능성도 별로 높지 않다. 그러니 돼지사육을 포기하고 농장부지를 완주군에 매각하라는 것이다. 언제라도 매입협상에 나서겠다는 것이 박성일 군수의 거듭된 공언이니 때를 놓치고 뒤늦게 후회하지 말라는 얘기다.
설령 거액을 쏟아 부어 요행히 소송에서 이기더라도 그걸로 끝이 아니다. 그리하여 돼지농장을 재가동 하더라도 이곳 주민의 앞선 생태의식과 행복추구정신, 그에 따른 뜨거운 참여의지를 감당하기 어렵다. 지난 반 년 동안 똑똑히 확인하지 않았던가.
우리는 지금껏 해오던 대로 뚜벅뚜벅 나아갈 것이다. 죽자 사자 무리해서 덤빌 일도 아니다. 그래봤자 힘만 패이고 빨리 지치고 만다. 그저 이것도 시골에 사는 맛이겠거니 하고 저마다 깜냥껏 제몫을 다하면 그만이다. 그것만으로 너끈히 이길 수 있음을 믿기 때문이다. 그것이 우리가 지나온 길이고 앞으로 걸어갈 길이다.
아무튼 첫판 싸움이 매듭지어지면서 새해도 밝았다. 느긋하게 한 해를 내다보며 구상하는 때다. 때마침 벼농사두레가 새해를 맞아 수련모임을 겸해 1박2일 바닷가 나들이를 떠나기로 했다. 돼지농장에 매달리는 와중에도 챙길 건 챙겨왔지만 아무래도 뜸할 수밖에 없었더랬다. 그래 다시 몸과 마음을 추슬러 심기일전 해보자는 뜻이다.
물론 지금은 농한기, 쉬어가는 철이다. 바로 그래서 지난 몇 해 동안 ‘농한기강좌’를 열어왔다. 지난해는 벼농사두레 회원들의 전문역량을 풀어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기조였는데, 올해는 어떤 방향으로 뜻이 모아질지 궁금하다. 하긴 아무려면 어떤가. 이것으로 시골사는 맛이 다채로워지면 그만이다. 월간 <완두콩> 2020년 1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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