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7. 13. 13:16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연둣빛 여린 줄기 몇 가닥이 물결 따라 흐느적이던 논배미는 이제 검푸른 빛이 도는 무성한 벼 포기로 넘실댄다. 지금은 일주일 남짓 거센 빗줄기를 퍼붓던 장마도 걷히고 폭염주의보가 끊이지 않는 무더위의 시간.
모를 낸 지 한 달이 가까워 온다. 벼농사는 아직까지 순조로운 편이다. 그 새 적당히 비가 내려준 덕에 물 때문에 애태우는 일은 없었다. 두 달 씩이나 장마가 지속되는 통에 역대급 흉작을 기록했던 지난해를 떠올리며 걱정이 컸으나 올해 장마철은 그나마 순하게 지나갔다.
물 사정이 나쁘지 않아 왕우렁이들이 제구실을 다한 덕분에 잡초가 거의 올라오지 않았다. 여느 해 같으면 한창 김매기에 바쁠 때인데 아침나절 논배미를 한 바퀴 돌아보는 것으로 그만이다. 이렇듯 김매기철이 싱겁게 지나가고 있지만 그래도 놀 건 논다. 양력백중놀이.
애초 고단한 세 벌 김매기를 마친 농부들을 위로하는 음력 7월15일의 잔치다. 그러나 요즘은 왕우렁이가 사람 손을 대신해 지심을 먹어치우니 손 쓸 일이 크게 줄어 양력 7월15일 쯤엔 김매기가 얼추 마무리된다. 그래서 위로잔치도 한 달 남짓 당겨서 벌인다. 올해는 김매기랄 것도 없었으니 위로랄 것도 없다. 그저 닭백숙으로 더위에 지친 몸을 보하고, 시원한 계곡물로 더위를 물리치면 그 뿐이다. 이번에는 특히 우리 벼농사두레와 밭농사 공동체인 ‘씨앗받는 농부 영농조합’과 함께 마련해서 더욱 뜻이 깊다.
그렇게 한시름 놓던 차에 사달이 났다. 시골 사람들 맘 편히 먹고 노는 꼴 못 보는 귀신이라도 붙었는지 환경파괴 사안이 또 불거진 것. 몇 년 전부터 시도 때도 없이 견디기 힘든 악취가 풍겨 고산 일대 주민들이 고통을 받아왔더랬다. 알고 보니 그 원흉이 만경강 변 남봉리에 들어선 돼지분뇨처리(액비생산) 시설이라는 것이다.
지난 2016년 신축돼 하루 반입량이 1톤에서 시작해 지금은 40톤으로 늘었다고 한다. 올해 들어 시설개량 명목으로 처리용량 증설(2천4백 톤 -> 5천5백 톤)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그 내막이 드러난 것이다. 그 동안 영문도 모른 채 돼지분뇨 악취에 시달려온 지역 주민들은 그야말로 경악하고 있다. 업체쪽은 애초 증설 사실은 애써 드러내지 않은 채 ‘악취 저감을 위한 시설개선’이라고 주민들을 속이려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시설증설이 지자체 예산지원으로 추진되는 사업이고 현재 완주군의 심의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악취로 시달려온 액비공장 주변 마을 주민 1백여 명은 완주군 심의위원회의 현장방문에 맞춰 시위를 벌였다. 시설증설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기존시설에 대한 허가도 취소해야 하며, 그 전까지는 악취관리사업장으로 지정해 저감대책을 마련하라는 것이다. 그나마 완주군 심의위원회가 시설증설에 부적합 결정을 내렸다는 소식이지만 액비공장은 지금도 가동을 계속하며 악취를 뿜어내고 있다. 힘겨운 싸움은 계속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편 1년 넘게 이어오던 이지바이오 비봉 돼지농장 재가동 관련 행정소송도 막판에 이르렀다. 얼마 전 열린 재판에서는 변론이 종결됐고 이제 마지막 선고만을 남겨두고 있다. 20년 가까이 돼지분뇨의 지독한 악취에 시달려온 주민들에게 완주군의 농장 재가동 불허가 조치는 너무도 정당하다. 그러나 문제가 법정으로 넘어간 이상 그 결론은 의사봉을 쥔 이의 손에 달려 있는 게 현실이다.
고산권 주민들이 어쩌다가 돼지똥 냄새로 수난이 끊이지 않게 됐는지 모르겠다. 어떤 행정조치, 판결이 내려지든 악취의 진원지를 근원적으로 없애는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겠지만 이 무더위 속에 많은 이들이 ‘개고생’ 하는 일이 제발 벌어지지 말았으면 싶다. 월간 <완두콩> 2021년 7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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