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똥과 상생의 길

2021. 8. 6. 14:18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이즈음 들녘에는 검푸른 물결이 넘실댄다. 특히나 논배미는 내리쬐는 따가운 햇볕을 자양분으로 광합성에 온힘을 다하는 벼 포기들로 기운이 넘쳐난다. 모내기 뒤 한 달 남짓 새끼치기로 식구를 늘리면서 몸피를 키우는 영양생장에 매달렸다면 이제 이삭을 만들고 나락을 살찌우는 생식생장 국면으로 접어드는 것이다.

 

농부는 중간물떼기로 이 과정을 독려하다. 이 때 불어나는 식구는 이삭을 맺지 못하는 헛 새끼로 양분만 축낼 뿐이니 물을 끊어 무효분얼을 가로막는 것이다. 나아가 이삭을 살찌우려면 영양분을 한껏 빨아들이도록 뿌리를 키워야 하는데 물을 빼 산소가 땅 속에 잘 스며들도록 하려는 공작이기도 하다.

 

올해는 날씨가 도와준 덕에 이 작업이 순조로운 편이다. 장마가 두 달이나 이어지면서 물을 떼지 못해 생육도 부진하고 병충해가 극심해 역대급 흉작을 빚은 지난해를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러나 세상일이라는 게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한 가지가 잘 풀리는가 싶으면 그새 잊고 있던, 아니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터지니 말이다. 다름 아닌 돼지똥 얘기다.

 

만경강변 남봉리 돼지분뇨 처리시설 증설문제가 완주군 심의위원회의 부적합 판정으로 한숨을 돌리나 싶더니 이지바이오 비봉 돼지농장 재가동을 둘러싼 다툼은 다시 요통치고 있다.

 

업체가 제기한 행정소송은 지난 78일 열린 공판에서 재판부가 변론종결을 선언하고 722일 선고를 내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런데 선고를 하루 앞두고 갑자기 선고를 유보하고 변론을 재개하겠다고 알려왔다. 앞서의 변론종결도 너무 이른 감이 있어 뜻밖이었지만 이번 변론재개 또한 흔치 않는 결정이라 어리둥절할 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재판부는 곧장 석명준비명령을 통해 에둘러 그 까닭을 드러냈다. 요컨대 완주군이 농장 재가동을 불허한 사유인 수질오염 총량제에 따른 오염부하량 초과중대한 공익 침해와 관련해 몇 가지 의문점을 해명하라는 것이다. 그것만 해명되면 완주군과 주민들의 손을 들어주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우리에게 한 번 더 기회가 온 셈이다. 결국 완주군의 치밀한 준비가 재판의 승패를 가르게 되었다.

 

아울러 주목되는 건 농장매각 문제가 막판쟁점으로 떠올랐다는 점이다. 주민들로서는 더는 지독한 악취에 시달릴 수 없으니 돼지사육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이 경우 업체는 농장매입과 개보수에 들인 비용을 고스란히 잃게 된다. 완주군이 적정한 가격에 농장을 사들여 생태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활용한다면 주민도 살고, 업체도 손해를 보지 않는 상생의 길이 열리게 된다. 다행히 완주군이 주민의 제안을 받아들여 농장매입 재원마련에 나서고, 전문기관에 맡겨 지능형 축산지원센터라는 활용방안도 확정해둔 상태다.

 

그러나 업체쪽은 그 동안 주민들의 제안을 뿌리쳐왔고 완주군에 대해서도 재판전략의 일환일 뿐 농장을 매입할 의사도 능력도 없다며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리 의심만 하고 있을 게 아니라 일단 매각협상에 나서볼 일이다. 그 과정에서 완주군의 진의를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을 테니.

 

실은 업체에 매각의사가 있느냐가 문제다. 업체가 소송에서 패하면 매입비용 등에서 손실을 피할 수 없고, 설령 승소하더라도 돼지사육을 막을 수 있는 행정조치는 또 있다. 주민들이 물러서지 않는 한 농장가동은 결코 쉽지가 않다. 업체가 여러 면에서 농장을 처분하기에 좋은 이 기회를 놓치지 말길 바란다. 월간 <완두콩> 2021년 8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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