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한꺼번에...

2021. 10. 7. 11:29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추래불사추(秋來不似秋). 가을은 왔으되 도무지 가을을 느끼기 어려운 나날이다. 코발트빛 새파란 하늘엔 뭉게구름 둥둥 떠가고, 들녘은 황금빛으로 물들어 넘실대야 하는 계절인데. 하늘빛이 어떤지 흥미를 잃은 지 오래고, 논배미 쪽으로는 눈조차 돌리기 싫어 애써 외면하고 있다.

 

가을장마가 남겨 놓은 생채기는 여적 아물지 않았다. 이태를 내리 기후위기라는 이름의 자연재해에 할퀴어 반타작 농사를 내다보노라니 기가 팍 꺾여버렸다. 꼭 해야 할 것만 겨우 갖추고 있을 뿐이다. 샘골지구 나락을 거둬들이려면 한 길 넘게 우거진 뚝방길 수풀을 예초기로 쳐내야 하는데 의욕이 나지 않아 하염없이 미루고 있는 중이다.

 

사정이 이러니 지난해에 이어 황금들녘 풍년잔치는 포기하기로 했다. 황금들녘도, 풍년도 현실이 아니니 어쩔 도리가 있겠나. 대신 서로를 위로하는 힘내잔치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반타작일망정 막상 거둬들이고 나면 기운을 차릴 수 있으려나. 햅쌀밥 잔치도 하고, 1111일에는 가래떡 넉넉히 뽑아 여기저기 돌리기로 했다.

 

이렇듯 코가 쑥 빠져 허둥대고 있는 와중에도 세상은 사람을 내버려두지 않는다. 생태보전, 주민의 환경권 따위에는 눈을 감은 채 오로지 돈벌이에만 혈안이 된 자본의 탐욕은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봉 돼지농장 재가동을 둘러싼 법정다툼은 이제 선고공판만 남겨두게 됐다. 지금으로선 그 결과를 속단할 수 없고 끝까지 돼지사육 재개가 얼마나 부당하고 주민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끼칠지 간절히 호소할 뿐이다. 상식이 지배하는 법정이라면 주민들 손을 들어줘야 마땅하다고 믿는다.

 

행정소송은 그렇다 치고, 완주군이 농장을 매입해 친환경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자 주민과 업체가 상생하는 길임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그러나 일단 손에 들어온 자산은 반드시 새끼를 쳐야 한다는 무지막지한 자본의 논리와 관련 제도의 한계로 그 앞길은 녹록치가 않다. 주민들은 이제 스스로 고혈을 짜내어 절박함을 내보여야 하는 처지로 내몰릴지 모르게 됐다.

 

뿐만이 아니다. 심의위의 부적합 판정으로 일단락된 줄 알았던 고산면 남봉리 분뇨처리장(액비공장) 증설문제가 되살아나는 모양새다. 완주군이 기존시설 개보수를 통한 악취저감을 명분으로 관련 예산 책정에 나선 것. 그러나 그 내용을 뜯어보면 애초 세웠던 전체예산 35천만원은 그대로지만 새로 책정된 악취저감 예산은 34백만원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사실상 증설인 셈이다.

 

이래저래 대책회의가 끊이지 않고 관련해 일처리를 하다 보니 숨 돌릴 틈이 없다. 생태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로 가는 길이 어찌 이리도 험난하단 말인가. 그런데 이게 끝이 아니다.

 

설립총회를 얼마 남겨두지 않은 완주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도 조합원 모집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소식이다. 의욕적으로 시작한 사업이고 미래의 건강한 삶이 달려 있으니 좋은 의료시스템을 갖추는데 뜻을 모으고, 힘을 모아야 하지 싶다. 뭐라도 보탬이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망가진 농사는 내쳐 둔 채 이리로 저리로 헤매 도는 꼴이라니. 그러고 보니 관련 책을 쓴 업보로 느닷없이 소환된 노동인권 고재 원고마감도 코앞이네. 참 숨 가쁘고 갑갑한 가을이 흐르고 있다. 월간 <완두콩> 2021년 10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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