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2. 16. 14:39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설을 쇠고 나서 세월이 어찌 흐르는지 잊고 있었는데 방금 전 벼농사두레 톡방에 눈에 번쩍 뜨이는 멘션이 하나 올라왔다.
‘내일 모레 대보름에 즈음하여 고산에서 이명주-귀밝이술 한잔 하실 분 선착순 모집!’
생각하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저요! 저요!” 이모티콘을 올려놓고 생각해보니 어느새 정웓대보름인가 싶고, 빠르게 이어지는 연상 작용에 심사가 울적해진다. 이제 슬슬 몸을 풀면서 농사지을 준비에 나설 때가 되었다는 얘기고, 그러자면 대보름잔치 달집 활활 태우며 겨우내 웅크렸던 가슴을 활짝 피워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올해도 그 잔치를 건너뛰어야만 하는 현실이 안타까운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3년째로 접어든 탓이다. 한편으론 그것이 팬데믹 종식으로 가는 징후라는 진단도 있지만 오미크론 변이로 하여 확진가가 폭증하고 있어 걱정이다. 하루 5만을 넘어 6만에 가까우니 당국으로서도 아직 방역체제를 풀거나 늦추지 못하는 어정쩡한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대보름잔치가 문제가 아니다. 일상의 삶이 흐트러지고 언제 되살릴 수 있는지 기약할 수 없다는 게 뼈아픈 것이다. 우리 벼농사두레만 해도 벌써 이태 째 손발이 묶여 있다. 당장 성황리에 진행되고 있어야 할 <농한기 강좌>는 말도 꺼내지 못한 채 속절없이 지나가고 있다. 연초의 회원엠티도 그랬고 또 무엇을 건너뛰게 될지 몰라 조바심이 드는 것이다.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인지 최근 들어 새로 합류하는 회원들이 늘어나고 있어 여간 반갑지가 않다. 활동이 사실상 중단된 ‘개점휴업’ 상황에서 나타난 현상이라 더욱 뜻 깊게 느껴진다. 길고 긴 터널을 지나 이제 빛의 세계, 삶이 펄떡이는 국면이 펼쳐지려는 징조인가 싶기도 하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 이어지는 '벙개'모임에 덥석덥석 함께 하고 반가운 마음에 무리를 하게 된다.
무리를 하게 되는 이유는 또 있다. 어느 날 불현 듯 떠오르는 생각이 있어 십 수 년 버릇이던 혼술(혼자 술 마시기)을 그만두었다. 그리 한 지 이제 석 달이 돼간다. 건강보다는 정신세계를 염두에 둔 일이라 잘 한 짓인지 아닌지는 더 두고 볼 일이지 싶다. 일단 의도했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문제도 없지 않다. 그 반작용 탓인지 함께하는 술자리마다 적정주량을 넘기는 일이 잦다는 것이다.
물론 과도기 현상으로 보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적정선을 찾게 되리라 여기고 있다. 하여 혼자 있을 때는 맑은 정신으로 탐구하고 여럿이 어울릴 때는 술기운이 바람직한 소통의 에너지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
요컨대 피할 수 없다면 누리라는 것이고, 누리되 생산적이고 창조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활의 활력소로 벌어지는 술판이 한 발 더 나아가 인간과 사회의 본질을 통찰하는 자리로 진화하면 어떨까 싶은 것이다. 사실은 그것이 내 남은 생의 중요한 버킷리스트의 하나였고, 이제는 현실로 만들고자 하는 것이다.
시원스레 소통하기 어려운 팬데믹 시대의 비극이 되레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보도록 했는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꿈은 이루어지기를. 월간 <완두콩> 2022년 2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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