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한기, 그 마지막 '몸부림'

2022. 4. 15. 07:50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이젠 꼼짝없이 농사철이다. 볍씨를 파종할 때 쓰는 상토가 오늘 토착했으니 말이다. 더는 아직도 농한기가 끝나지 않았네우길 수 없게 된 것이다. 아쉽지만 세월을 어찌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대보름 지나 노란 복수초 피어나고, 우수 경칩 지나 매화가 피어날 때까지도 밭농사는 시작됐지만 벼농사는 아직 멀었다며 짐짓 여유를 부렸더랬다. 하여 지난 며칠, 농한기의 마지막 몸부림이라도 되는 듯 여기저기를 싸돌았다. 봄바람도 쐬고 꽃구경도 할 겸 해서다.

 

부러 남들 일하는 평일을 골라 길을 나섰더니 차도 막히지 않고 발길 닿는 곳마다 그렇게 호젓할 수가 없었다. 벚꽃은 흐드러지게 피어 차창을 스쳐가고, 저 아랫녘에서는 어느덧 꽃비로 흩날리며 아찔한 정경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사람들 발길이 뜸한 고즈넉한 산사는 봄빛에 푹 빠져 있었다. 부드러운 바람결에 흔들리는 풍경소리가 느긋하기만 하다. 서두를 일도 없다. 그야말로 산려소요, 여기저기 기웃대며 절간 경내를 느릿느릿 걷는 맛이라니. 활짝 핀 홍매화는 이제 절정기를 지나고 있고 바로 옆 왕벚꽃은 절정기로 치닫고 있다. 이내 발길을 돌려 전나무 숲길을 따라 깊은 숨 들이마신 뒤 서해바다를 향한다. 해안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이어지는 변산 해변은 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파도가 밀려들다가 어느 순간 노을빛으로 붉게 물드는 그 곳. 봄 바다도, 밤 바다도 그저 아름다울 뿐.

 

그 다음은 누정순례. 아무도 없는 누정마루에 책상다리를 하고 주질러앉아 그 아래 펼쳐진 풍광을 물끄러미 내다본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마룻바닥에 드러누우면 옛 사람들의 자취가 눈에 들어온다. 그렇게 스르르 잠이 들 수도 있지만 다시 발길을 옮긴다.

 

자연에 최소한의 손길만을 더한 우리 고유의 원림(정원)은 언제 찾아도 마음이 편해진다. 절간처럼 고요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북적이지 않아 좋다. 제월당 대청마루에서 한참을 노닥이다가 광풍각으로 자리를 옮기다 보면 아담한 산수유, 간드러진 복사꽃에 한참이나 눈길을 준다. 깎아지른 절벽인 듯 아득한 느낌을 주는 계곡물을 물끄러미 내려 보다가 이번엔 마루에 걸터앉는다. 거기에 봄이 무르익고 있었다.

 

그렇게 봄바람 쐬고 돌아오니 정말 농사철이 코앞에 다가와 있다. 이제는 농사준비를 시작해야 하다. 벼농사두레 정기총회가 그 출발점이 되는데 오미크론 변이 바이러스가 휩쓸면서 애초 잡혔던 일정을 2주 연기한 바 있다. 회원 가운데도 확진자가 급증하고 밀접접촉자도 적지 않아서다. 그나마 유행이 다소 수그러들어 이번 주말로 연기한 회의는 그대로 진행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코비드 유행상황을 고려해 바깥 잔디마당에서 진행한다. ‘봄소풍을 겸해서다. 임원진 임기가 끝나는 해여서 새로운 진용을 꾸리는 게 핵심의안이지만 경선이 치러질 것 같지는 않으니 참석자들의 관심은 봄소풍에 쏠려 있는 듯하다. 소풍 프로그램으로는 회원인 대중음악 뮤지션의 미니콘서트와 푸짐한 상품이 걸린 동네방네 퀴즈쇼따위가 사전행사로 마련돼 있다.

 

때를 같이해 당국이 코로나19 감소세에 따른 조치로 대부분의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를 풀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드디어 2년 넘게 이어진 기나긴 팬데믹의 터널을 빠져나가는 모양이다. 가슴이 뛴다. 월간 <완두콩> 2022년 4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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