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내기철, 숨이 막힌다

2022. 6. 17. 07:39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장대비가 쏟아진다. 소나기. 잠시 그쳤다가는 이내 다시 퍼붓기를 거듭하고 있다. 빗줄기가 세차서 농작업을 하지는 못하지만 반갑기 그지없다. , 양파를 캔 뒤 햇볕에 널어 말리고 있는 농가한테는 야속하기 짝이 없는 비라는 점이 걸리긴 하다. 그래도 미안하지만 내 코가 석 자이니 표정관리하고 있을 겨를은 없다.

 

한 달 넘게 가뭄이 계속되던 터다. 온 들녘이 타 들어가 작물이 말라 비틀어지던 중이었다. 물이 없어 모내기를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곳도 있었다. 우리 벼농사두레 회원들의 논배미가 스무 마지기 넘게 모여 있는 샘골이 그랬다. 저수지 수문이 고장 나는 바람에 물이 빠져 나갔고, 가물 즈음에야 수리가 끝나 물을 충분히 가두지 못했다. 수문 관리자는 나름 물을 아끼겠다며 꽁꽁 잠가두고 열지를 않아 그 일대의 많은 농가가 모내기 일정을 한없이 늦추어 오던 참이다.

 

며칠 전부터 굵은 비가 내리고 나서야 비로소 수문이 열렸다. 모내기가 코앞에 닥친 벼두레 회원들이 어제서야 우르르 몰려가 도랑을 치고, 논배미 물꼬를 막고, 우거진 논둑 풀을 쳐내느라 바삐 움직였다.

 

오늘부터는 로터리-써레질도 시작됐다. 트랙터 작업자는 연신 물이 모자란다고 푸념이다. 그 와중에도 모를 낼 수 있는 곳이 한 배미나 될까 걱정했던 고니 형님의 너멍굴 천수답 다섯 마지기는 다행히도 세 배미 모두 오늘 써레질을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석수 형님이 짓는 월촌 세 마지기는 천호천 수위가 낮아 여적 물을 들이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있다는 소식. 나는 나대로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논배미를 돌며 물이 잘 들고 있는지, 물이 새는 곳은 없는지 살펴보느라 종종거려야 했다.

 

그러는 사이 세찬 빗줄기가 쏟아져 급히 비를 피해 들어왔다. 사실 이 바쁜 와중에 언감생심이지만 그나마 소나기 내리는 틈을 타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콩밭에 가 있다. 양파를 수확하느라 오늘에야 양수기로 물을 품어대기 시작한 서봉 네 마지기와 수로에서 빠져나오는 수량이 많지 않은 샘골은 때 맞춰 써레질을 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수풀이 우거진 못자리 배미 논둑을 아직 치지 못 했는데...

 

이렇게 연중 가장 바쁜 모내기철이 흐르고 있다. 올해는 볍씨 문제로 못자리를 한 번 망치는 바람에 모내기가 여느 해보다 일주일 남짓 늦어졌다. 그나마 두 번째 못자리는 두둑 표면을 제대로 고르지 못해 듬성듬성 이빨 빠진 불량모판이 적지 않다. 그래도 그만하길 다행이다.

 

다음 주부터 모내기를 시작하니 이번 주말 모판을 나르는 벼두레 공동작업이 펼쳐진다. 공동작업 가운데 가장 고되고 품이 많이 드는 공정이다. 다행히 생각보다 많은 이가 일손을 보태겠다고 나서 그나마 한숨을 돌리고 있다. 사실 모판을 떼어 트럭에 옮겨 싣고 여기저기 흩어진 논배미에 날라다 얌전히 부려 놓아야 하니 몹시 고된 일이다. 하지만 여럿이, 그것도 많은 사람이 함께 일손을 나눈다면 한결 수월하고 여유 있게 넘어갈 수 있다. 올해는 점심 걸지게 먹고 나서 장기자랑 같은 걸 벌려 볼 수 있으려나

 

바쁘기로도 첫손에 꼽히지만 해마다 생각지도 못한 사달이 나는 바람에 애를 먹어야 했던 모내기 철. 올해는 이미 모 농사부터 어마어마한 시련을 겪었으니 모를 낼 때만큼은 순풍에 돛 단 듯이 지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월간 <완두콩> 2022년 6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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