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으로 바위를 깨다

2022. 9. 19. 08:36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몹시도 기쁜 소식이 전해졌다. 비봉 돼지농장 재가동을 둘러싼 행정소송 1심에 이어 2심에서도 주민과 완주군이 승소한 것이다. 그야말로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 다윈이 이긴 셈이다.

 

광주고등법원 전주 행정1(부장판사 백강진)는 지난 914일 열린 가축사육업 불허가처분 취소 청구 소송항소심 선고 공판에서 업체 쪽의 항소를 기각하는 판결을 내렸다. 비봉 돼지농장 재가동을 불허한 완주군의 행정조치가 정당하다고 본 1심 판결을 유지한 것이다.

 

재판부는 판결에서 중대한 공익상 필요가 있다면, 법령에 명문 근거가 없더라도 어느 정도 재량판단하여 허가를 거부할 수 있다고 전제한 뒤 완주군이 불허가를 내린 세 가지 처분사유 모두가 정당하다고 보았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사육시설 바닥과 벽에 금이 가는 바람에 빗물이 흘러들고 있어 사육시설 기준에 부적합하다.

 

둘째, 돼지 1만 마리를 사육할 경우 만경강A 단위 유역에 유입되는 오염부하량이 크게 늘어 금강수계 물관리 및 주민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른 수질오염총량제의 할당 오염부하량이 초과돼 향후 개발사업 승인·허가 등의 제한으로 지역발전이 저해된다.

 

셋째, 농장부지가 가축사육 제한지역 안에 있어 사육제한이 필요하고, 10여 년 동안 방치된 노후시설의 보수가 필요하며, 가축분뇨 악취 저감시설을 갖추지 않아 환경오염 우려가 커 지역주민의 반대민원이 극심한 상황을 고려했을 때 허가했을 때 침해되는 공익이 중대하다.

 

재판부는 이와 관련해 갈수록 환경과 축산의 조화를 중시하는 경향에 따라 축산업에 대한 규제가 차츰 강화하는 추세라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함으로써 이번 판결이 그런 시대정신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내비쳤다. 이번 판결은 특히 1심 판결에 견줘 진일보한 것이다.

 

1심 재판부는 “‘지역 주민의 극심한 반대민원을 불허가 처분사유로 든 것만은 부적절하다고 판시한 바 있다. 그러나 이번의 2심 재판부는 인근 주민들의 불편도 공익상 고려요소 중 하나에 해당함은 부인할 수 없다고 하여 그마저 정당성을 인정했다. 그야말로 주민과 완주군의 완벽한 승리인 셈이다.

 

그 밑바탕에는 국내 첫손에 꼽히는 대형로펌에 홀홀단신으로 맞서온 완주군 소송대리인 홍정훈 변호사의 헌신과 열정이 자리하고 있다. 추석연휴 하루 전, 밤늦게까지 참고서면을 제출하는 등 최선을 다한 그 고마움을 잊지 못할 것이다.

 

대법원의 마지막 판단이 남아 있긴 하지만 법조계 주변에서는 대체로 이 정도라면 뒤집어지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보는 듯하다. 물론 업체로서는 이후의 전략적 대응을 위해 상고를 제기할 가능성이 높다.

 

지역주민 대응조직인 이지반사(이지바이오 돼지농장 재가동을 반대하는 완주사람들)는 줄곧 법정다툼이라는 적대적이고 소모적인 방식 대신 완주군이 농장을 매입해 친환경적으로 활용하는 상생의 길을 찾자고 호소해왔다. 다행히 이 호소가 받아들여져 얼마 전 완주군과 지역주민, 완주군과 업체 사이에 농장부지 매매를 적극 추진하면서 그 원칙과 기본방향을 담은 협약서를 체결한 바 있다. 이로써 비봉 돼지농장 사태는 문제해결을 위한 8부능선을 넘어섰다고 할 수 있겠다.

 

다들 계란으로 바위치기라 했고, 싸움에 나선 주민들 또한 승리를 확신하지 못해온 터다. 대법원 확정판결과 매매성사로 일이 마무리된다면 우리는 이를 감히 기적이라 부를 것이다. 월간 <완두콩> 2022년 9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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