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문제다?

2022. 7. 14. 12:59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세상을 살다 보면 전혀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상황에 부닥칠 때가 더러 있다. 특히나 사람 관계에서 이런 일이 빚어지면 그 결과가 사뭇 참담해지기도 한다. 예컨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다 했는데 상대가 이를 형편없이 폄훼하는 경우다. 심지어 최선의 노력 그 자체를 전혀 다른 시각에서 싫어하기도 한다. 당하는 사람으로서는 답답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는 노릇이지만 당최 어쩌란 말인가.

 

이런 일은 사람 관계뿐 아니라 자연 관계, 가령 농사에서도 벌어진다. 물론 식물이란 게 판단능력이나 감정을 지닌 존재가 아니니 사람처럼 변덕을 부리거나 싫증을 내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그 안에 설정된 생장 프로그램에 따라 스스로를 밀고 가면서 종종 사람(농부)의 뒤통수를 치기도 한다.

 

생각지 못한 사달이 끊이지 않은 올해 벼농사. 모내기 공정에 이르러서도 애를 먹어야 했다. 모판에 문제가 생긴 모모 씨네는 기계이앙을 못하고 급히 일꾼을 모아 이틀 동안 손 모내기로 해치워야 했다. 못자리 배미 옆 두 마지기는 논 주인이 객토를 하는 바람에 로터리 작업이 불가능해 결국 모를 내지 못했다.

 

이 정도 문제를 뺀다면 올해 모내기는 그럭저럭 큰 탈 없이 마쳤다고 할 수 있다. 그래 한숨을 돌리고 모모 씨네 창고 앞마당에서 잔치도 벌였다. 때맞춰 장마가 찾아와 비도 적당히 내려주어 잡초 걱정도 덜던 판이다. 그런데 지역경제순환센터(고산면 삼기리) 앞 세 마지기에 피가 많이 올라왔다는 급보가 전해졌다. 달려가 살펴보니 논배미 전체를 피가 뒤덮고 있다. 가히 피바다라 할 만했다.

 

올해로 열여섯 번째를 맞은 단오한마당 잔치 행사 프로그램의 하나로 손 모내기 체험이 펼쳐진 바 있다. 행사가 열린 지역경제순환센터 바로 앞에 자리 잡은 논배미에 고산지역 학생과 학부모 50여 명이 참여했다. 문제는 사후관리.

 

손 모내기 체험답은 벼농사두레 회원들이 짓는 논배미가 몰려 있는 곳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 모를 낸 직후에는 하루가 멀다 하고 살펴봐야 하는데 그럴 여건이 안 되었던 것. 한동안 그렇게 내버려 뒀으니 피바다를 이룬 것은 어쩌면 당연한 노릇이었다. 문제는 피가 너무 자라 우렁이를 더 풀어 넣어도 손을 쓸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이었다.

 

다른 수가 없었다. 단오한마당 주최단체인 고산향 교육공동체와 벼두레 단톡방에 급한 구원요청이 올라왔다.

 

시간이 되시는 분은 오늘 저녁 6시부터 피사리(김매기)를 함께 해 주시라

 

저녁 시간까지 섭씨 30도를 훌쩍 웃도는 무더위 속에 가능할까 싶었는데 첫날 저녁 열 명 남짓이 모여 두 시간 동안 꾸역꾸역 움직이니 그래도 절반 가까이 해치울 수 있었다. 이튿날 저녁에는 이보다 많은 열댓 명이 참여했다. 사위가 어둑어둑해져 피아가 구분되지 않을 때까지 일을 다그쳐 결국 김매기를 모두 마칠 수 있었다.

 

이렇게 위험한 고비 하나를 또 넘겼다. 물론 잡초에 뒤통수를 맞고 이미 꽤 많은 영양분을 빼앗겼으니 소출이 줄어드는 것만큼은 피하기 어렵다. 그래도 농사 자체를 망치지는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 아닌가. 많은 것이 마음에 달린 사람 세상과 달리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움직이는 자연 세계가 더 미덥다고 해야 하는지... 당최 모를 일이다.

 

이로써 김매기 국면도 사실상 끝이 났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적당한 비가 꾸준히 내려주어 물 높이를 맞출 수 있었고 그 덕분에 잡초가 올라왔다는 소식이 아직은 없는 까닭이다. 그러니 우리는 다시 양력백중놀이 잔치판을 벌일 것이다. 월간 <완두콩> 2022년 7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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