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 8. 14:05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계묘년, 토끼해가 밝았다. 토끼띠인 나로서는 환갑이 되는 해인데 그런 탓인지 새해를 맞는 심경이 좀 복잡하다. 어쩌면 은근히 ‘환갑잔치’를 고대하는 부류도 있을지 모르겠다만 ‘환갑’이란 말에서 묻어나는 느낌은 어쩔 수 없이 후줄근하다. 하지만 요샛말로 ‘백세시대’라 치면 이제야 중년에 접어드는 셈이니 기죽을 까닭이 없지 싶기도 하다.
세상 분위기를 보면 나이를 들먹일 나이가 아닌 게 맞는 듯하다. 그렇다고 심신이 회춘하는 건 아니니 한 해를 구상하면서도 몸 부리는 일은 애써 꺼리게 된다. 올해는 그 새는 하지 않던 짓, 새 다이어리에 한 해 계획을 적어보았다. 앞으로 해야 할 일, 하고픈 일을 죽 늘어놓는 식이었다.
역시나 뜨겁게 무엇인가를 좇고 싶은 생각은 거의 떠오르지 않는다. 그저 세상의 흐름에 맡기거나 물끄러미 바라보는 ‘관조’의 경지라고 할까. 날짜 또한 그저 숫자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시간을 다투어 가며 이루어야 할 그 무엇이 이제 내게는 남아 있지 않은 것일까.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 서글픔이 밀려 들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삶도 나름 괜찮겠다 싶어진다.
그래서 올해도 나의 화두는 ‘깨달음’이다. 옛 어른이 그랬다지 않는가.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고.
물론 살아내야 할 날이 많이 남아 있다면 ‘먹고사니즘’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그런데 그게 그리 절박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문제라면 문제겠는데, 아무리 따져봐도 굶어 죽을 일은 없겠거니 생각하면 버릇처럼 밀려들던 조바심이 시나브로 누그러지는 것이다. 전업인 벼농사로는 기껏해야 입에 풀칠이나 할 수 있는 수준이다. 농사 좀 잘 지어봤자 떼돈이 굴러오는 것도 아니니 그게 그거다. 소득을 더 늘리자면 다른 방도를 찾아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 일인가. 이것저것 궁리해보다가 ‘까짓거 안되면 어쩔 수 없지’ 그러고 마는 것이다.
‘이제 몸 부리는 일은 꺼리게 된다’고 했지만 벼농사로 말하자면 유일한 밥벌이 수단이고 십 년 넘게 부대끼다 보니 이제는 그럭저럭 몸에 익었다. 갓 쉰 살에 농사일을 손에서 놓았던 우리 할아버지를 생각하면 격세지감이지만 앞으로도 십 년은 너끈할 듯 싶다.
그나마 그 벼농사라는 것도 내 생업으로 보다는 벼농사두레 일로 여겨지는 문제겠다. 벼두레 작업일정이 잡히면 나는 거기에 맞추기만 하면 되는 그런 관계 말이다. 게다가 벼두레 사업을 놓고서도 ‘염불보다 잿밥’이다. 벼두레 또한 새해를 맞아 지난해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한 해를 설계하는 정기총회를 앞두고 있다. 그런데 대표인 나로 말하자면 벼농사보다는 다른 문제에 ‘꽂혀’ 있다. 벼두레가 지역사회와 호흡을 같이 하면서 지속할 수 있도록 ‘체제전환’을 모색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길어지니 이 정도로 해두자.
새해 구상을 가다듬으며 ‘목적 없는 삶’을 떠올렸댔다. 느닷없고 뜬금없이 들리고 허무주의가 짙게 밴 얘기로 들릴 수도 있겠다만 ‘희망 없음’을 말하려는 게 아니다. 우리 삶에서 ‘목적’이란 ‘욕망’과 뗄 수 없고 ‘소유욕’으로 치닫기 쉽다. 그 욕심으로 하여 환경은 끝없이 파괴되고, 자연생태는 돌이킬 수 없는 위기로 내몰렸다. 기후위기로 인류멸종을 걱정하기에 이르지 않았는가 말이다.
아등바등 무엇인가를 좇기보다는 내려놓고, 덜어냈으면 싶은 것이다. 다들 목적보다 ‘더불어 사는 과정’을 누리는 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월간 <완두콩> 2023년 1월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