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2. 2. 23:33ㆍ누리에 말걸기/<낭만파 농부>
어느덧 새해도 달포가 지나갔다. 그런데 올해 1월은 좀 별쭝맞다 싶게 바삐 돌아간 듯하다. 해가 바뀌든가 말거나, 늦도록 이불 속에 뭉그적대는 아침처럼 한껏 느긋한 게 농부의 1월 아니던가. 게다가 날짜 감각 둔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나로서는 더더욱 그러한데 이번엔 달랐다.
물론 여느 해보다 설이 일렀던 점이 있다. 내내 무신경하다가 설을 맞고서야 해가 바뀌었음을 알아채는 게 농부의 습성이니. 그로부터 사부작거리기 시작해 대보름 어간에 이르러서야 몸을 부리는 생체리듬 말이다. 어인 ‘라떼’ 타령이냐 싶겠지만 나같이 벼농사를 전업으로 하거나 아직도 농한기가 살아있는 농부들에게는 엄연히 ‘실화’다. 암튼 2월 중순에나 닿던 설이 올해는 1월 중하순으로 당겨졌으니 심신 또한 일찌감치 기지개를 켜게 마련이렷다.
심지어 올해는 설 이전부터 그랬다. 1월 중순에 벼농사두레 정기총회를 여는 바람에 새해 첫머리부터 준비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던 것. 정기총회라는 게 지난 한 해를 갈무리하고 새로운 1년을 구상하는 의례적 행사인 게 보통이지만 이번엔 의미가 남달랐다.
그동안 8년의 이력을 쌓아오면서 덩치가 제법 커졌고 이런저런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 내 비중도 높아졌다. 3년을 지나면서 바뀐 상황에 맞춰 형식을 갖추기 위해 회칙과 대의구조 등 조직체계를 세웠던 것처럼, 이제 출범 10년을 앞두고 바뀐 위상에 걸맞게 ‘체제전환’을 이루어야 하는 시점이었다.
회원수련회를 비롯해 기회가 닿을 때마다 관련해서 몇 가지 의논이 오갔고 그 기조는 정기총회의 ‘회칙개정’으로 수렴됐다. 요컨대 실제 벼농사를 짓는 회원들로 ‘경작위원회’를 신설한다는 것. 이는 벼농사 관련 활동을 ‘전체사업’에서 ‘부문사업’으로 그 위상을 낮춰 잡았다는 얘기다. 그러니까 벼농사두레가 앞으로는 벼농사 말고도 다른 영역에까지 활동폭을 넓히겠다는 뜻이다.
사실 그 동안에도 “벼두레는 벼농사를 핑계로 먹고 노는 모임”이라는 규정이 우스개처럼 통해오던 터다. 이제 공식적으로 농작업을 경작위원회가 주관하게 되었으니 벼두레 전체로는 좀 더 자연스럽게 다양한 활동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더 넓어진 활동 폭에는 아무래도 지역사회에 도움이 되는 내용으로 채워질 것이다. 물론 서둘러 그 방향을 그리거나 가늠해볼 일은 아니다. 이는 어디까지나 새롭게 짜일 집행부의 몫이 될 터이니.
총회 이튿날 오전 대천의 한 포구로 향했다. 숙취로 속이 거북했지만 세찬 바닷바람 속에서 마음으로나마 짐을 내려놓은 홀가분함을 느껴보고 싶었던 것일까. 물론 시원한 매운탕에 소주 몇 잔으로 속부터 다스리고. 이심전심으로 나들이 길을 잡아준 도반들이 있다는 것은 또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설연휴가 지나자마자 벼두레는 다시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다. 새해 첫 사업으로 ‘농한기강좌’가 설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3년 만에 다시 열리는 강좌다. 다섯 차례 강연을 준비했으나 느닷없이 코로나19 바이러스가 번지면서 2020년 강좌는 첫 강연이 끝나자마자 눈물을 머금고 막을 내렸더랬다. 그러니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분위기. 지난 5년 동안의 강좌를 함께 되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했다. 모아 놓고 보니 거의 ‘대하소설’이라 할만하다. ‘그룹과외’처럼 시작해 자체 세미나-외부전문가 초청강의-벼두레 회원(전문가)이 강사로 나서는 대중강연으로 진화를 거듭해온 발자취가 눈에 선하다.
그러나 세월이 적잖게 흐른 만큼 형편도 많이 바뀌었다. 온라인 단체대화방에 몇 가지 의견이 올라왔는데 여러 갈래로 나뉜다. 이제 농한기강좌를 기획하는 집행부 회의에 나설 시간이다. 과연 어떻게 가닥이 잡힐지 스스로도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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