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철 맞은 봄꽃들의 잔치

2023. 4. 11. 20:55누리에 말걸기/<낭만파 농부>

[낭만파 농부] 올해도 ‘탐매’ 나들이
    2023년 03월 22일 07:01 오전
 

 

울안에서도 꽃잔치가 시작됐다. 3월이 열리자마자 꽃망울을 터뜨렸던 청매는 절정기를 지나 이미 시들고 있다. 어림셈을 해보니 지난해보다는 보름, 평년보다는 일주일 남짓 빨라 보인다. 바통터치 하듯 옆자리의 홍매가 이제야 피어나고 있다. 꽃피는 섭리란 당최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활짝 피어난 청매를 보노라니 느닷없이 조급증이 일어 아랫녘으로 ‘탐매’ 나들이를 다녀왔더랬다. 열흘 전 일이다. ‘매화마을’ 이름값을 하느라 널찍한 산자락이 온통 연분홍빛으로 물들었다. 사이사이 빨간 홍매화, 노란 산수유가 점점이 박혀 운치를 더했다. 싸한 매향이 내내 콧속을 맴도는 것이었다. ‘매화축제’가 시작되기 전날이고 평일이라 사람에 치이지 않은 게 다행이지 싶었다. 다른 일행이 운전대를 잡은 덕에 점심은 섬진강 재첩 요리에 반주까지 곁들이는 호사까지 누렸으니.

지난 행적을 뒤져보니 4년 전 같은 날짜에도 탐매 나들이를 다녀왔음을 알겠다. 코비드19 팬데믹이 유행하기 전이었고 “농사 시작되기 전에 콧바람이라도 쐬자”는 ‘벙개’에 벼두레 회원 열 두엇이 동행했더랬다. 아쉽게도 선암매는 이제 막 피어나고 있었고 비까지 내려 ‘우중매’를 연출했다. 내친걸음에 맞은편 송광사에 들러 저녁 예불을 참관할 요량이었는데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오돌오돌 떨어야 했던 기억.

이번에는 돌아오는 길에 화엄사엘 들렀다. 그곳 홍매화를 ‘알현’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는데 그제야 막 피어나는 터라 각황매 그 숨 막히는 빛깔이 아니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돌아설 수밖에 없었고, 일주일 남짓 지난 뒤 페이스북에 올라온 활짝 핀 자태를 마주할 수 있었다. 하긴 세상살이가 다 그런 법이지.

어쨌거나 ‘매화 전성시대’가 저물면서 봄꽃 잔치는 비로소 제철을 맞게 된다. 수선화가 앙증맞은 꽃을 피워올리고 개나리도 막 꽃망울을 터뜨렸으니 머지않아 울안은 온통 노랗게 물들겠지. 이에 질세라 명자꽃, 벚꽃, 복사꽃도 붉은 꽃잎을 피워올릴 것이고 ‘이화에 월백하는’ 배꽃이 새하얀 자태를 뽐내겠지.

어디 이뿐이랴. 봄은 꽃이요, 그것도 사태를 지게 되어 있다. 꽃 사태. 물론 기후변화가 도지면서 꽃피는 질서가 그야말로 뒤죽박죽이라고 여기저기 푸념이다. 꿀벌들도 헷갈리겠지 싶다. 사람 노릇 또한 해 먹기가 쉽지 않은 시절이다. 겨울 지났나 싶어 잔뜩 봄기운을 기다렸더니만 걸핏하면 초여름 날씨가 펼쳐지니 하는 얘기다. 얼마 전 산불이 할퀴고 간 뒷산 자락, 밑동이 불타버린 소나무 그 늘푸른 잎이 누렇게 말라 비틀어가고 있어 가뜩이나 심란하던 차다. 그래도 아직은 봄꽃 잔치가 살아있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길어야 달포, 이 꽃잔치도 결국은 막을 내릴 것이다. 연분홍 또는 하얀 꽃잎은 봄바람에 흩날릴 테고, 꽃잎이 진 자리에는 연두빛 새싹과 이파리가 돋아나겠지. 그렇게 꽃잔치가 끝날 즈음, 마침내 벼농사가 시작된다.

오늘은 농협 영농자재센터에 못자리에 쓸 상토를 신청했다. 토양을 분석하는 데 쓸 논배미 흙을 퍼다가 농업기술센터에 제출했다. 적군이 몰려오듯 농사철이 한발 한발 다가오고 있는 것이지. 농한기의 자유시간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른 셈이다.

안 그래도 벼두레 <농한기강좌>가 이번 주말 막을 내린다. 벼두레 회원들이 패널로 나서 ‘벼두레 식’ 유기농 벼농사에 대해 대담을 나눌 예정이다. 강연이 아닌 ‘토크 콘서트’ 형식의 프로그램은 처음 시도하는 것이다. 아울러 농사철이 눈앞에 닥친 만큼 벼농사 공정을 안내하는 경작설명회를 겸하게 된다. 농한기의 대미를 장식하는 무대이자 농사철의 개막을 알리는 자리인 셈이다.

꽃피는 이 봄, 숨이 가빠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