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 15. 15:08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새해가 되었다. 을사년, ‘푸른 뱀의 해’라고, 지혜를 상징한다고, 잘 계획하고 실행하면 풍요를 얻을 수 있다는 얘기도 더러 있지만 아무래도 국권을 잃은 을사조약(1905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더욱이 계엄선포에 이은 내란사태에다 제주항공 참사까지 겹쳐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운’ 나날이 이어지는 시절이다. 상황은 너무도 뚜렷하고 나아갈 길 또한 자명하건만 ‘정략’에 휘둘린 시국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뿌옇게 흐려진 형국이다.
하긴 세상일이란 게 죄다 내맘처럼 돌아갈 수만은 없는 노릇이겠다. 그래도 ‘사필귀정’이라 하지 않았던가. 때로는 헛다리를 짚고 엇박자로 헤매다가도 결국은 제 길을 찾아가게 돼 있다는 얘기다. 그리될 거라고 본다. 설령 그리되지 않는다해도 어쩌란 말인가. 시간이 더 필요하고 더 많은 시행착오를 거쳐야 한다면 그럴 수밖에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제왕적 권력을 거머쥔 한 사람의 독단이 부른 망동으로 숱한 이들이 고통을 겪고 있다. 민주사회의 시민이라는 자부심이 처참히 무너진 건 물론이고, 온갖 경제지표가 곤두박질치고 너도나도 장사가 안 된다고 아우성이다. 나 또한 그 피해권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어수선한 시국이 이어지면서 한동안 쌀 주문이 뚝 끊긴 것이다. “쌀이 안 팔리면 남은 쌀 먹고 살면 되지” 씁쓸한 농담 뒤로 아찔한 생존의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이럴 수도 있구나.
그래도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는 근거 없는 낙관이 관성적인 삶을 지탱해주고 있다.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도 그럭저럭 농한기를 누리고 있는 중이다.
먼저 다섯 번째를 맞은 ‘농한기영화제’. 고산권벼농사두레와 완주미디어센터가 함께 마련한 프로그램이다. 일주일 동안 매일 저녁 한편씩 주로 독립영화를 틀었다. 이번에는 퀴어, 미투, 종군위안부 등 성평등 주제를 다룬 영화가 주로 상영됐다. 탄핵정국 속에 펼쳐진 광장에서 다양한 의제가 꽃을 피운 상황과 맥을 같이 하는 듯도 하다. 뜻밖에 적지 않은 관객이 몰렸는데 위로가 필요한 시절임을 보여준 건 아닌가 싶었다.
한국 근현대미술 작품을 만난 건 특별한 행운이었다. 전북도립미술관이 마련한 ‘이건희 컬렉션’이 그것. 정경유착과 무노조경영으로 악명높은 삼성재벌 소유주가 그 재력의 일부를 예술품에 안배해 이번 전시회 부제처럼 ‘선물’을 안기다니 이거야말로 격세지감 아닌가 말이다. 이중섭 박수근 이응노 김환기 김기창... 숱한 거장들의 작품을 친견하는 감동이라니. 느닷없이 횡재한 기분이랄까.
아무리 농한기라지만 하루하루를 이렇듯 특별한 감동으로 채울 순 없는 노릇이다. 육신의 생존을 위해 삼시세끼 챙겨야 하고, 생각을 정리하고 건강을 돌보기 위해 뒷산을 오르는 일도 빼놓을 수 없는 일상이다. 낙엽이 덮인 오솔길에 흰 눈이 쌓이고 짐승의 발자국이 찍힌 그 길을 거니노라면 세간의 번뇌가 무상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오솔길이 끝나는 곳에서는 세상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 다시 이어진다.
하여 우리는 그 세상을 살아내야 한다. 우리 삶에 모범답안 같은 건 없다. 저마다 살아가는 것이다. 각자도생, 제각각 살길을 찾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당연히 공동의 목표를 위해 힘을 모아야 한다. 힘을 모으되 우리가 마침내 이루고자 하는 지향점을 견지하자는 것이다. 그것은 사회적 약자의 권익보장, 기후위기 극복과 생태보전, 성평등한 사회 같은 것이겠다. 이야말로 권력의 향배 따위보다 훨씬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 월간 <완두콩> 2025년 1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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