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봄이 슬픈 까닭은

2025. 3. 12. 10:28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마침내 봄이다. 아직 꽃을 구경하진 못했다. 올해는 개화시기가 꽤 늦고, 여기저기 매화축제가 줄줄이 연기됐다더니 우리집 울 안에도 꽃은 멀어 보이다. 경칩 무렵이면 꽃잎을 열어온 매화는 여태 망울을 꼭 닫고 있고, 산수유는 이제 막 터지는 참이다.

 

동네 톡방에 활짝 핀 노오란 복수초가 올라와 앞뜰에 나섰다. 날은 확 풀려 푸근하지만 풍경은 휑뎅그렁하기 짝이 없다. 풀 나무에는 물이 오르고 한껏 기지개를 켜고 있지만 화사한 꽃과 새순을 을 구할 수 없으니 춘래불사춘, 봄은 왔으되 봄 같지 않은 시절이다.

 

어디 풍경뿐인가. 비상계엄에 이은 내란 사태가 순리대로 수습돼 정상을 되찾나 싶더니 뜻밖의 상황이 펼쳐지고 있어 걱정이다. 정략적 대응이 판치고 극우세력의 난동까지 겹쳐 시국은 어수선하기 그지없다. 물론 사필귀정으로 마무리되리라 믿지만 어떤 후유증을 남길지, 또 다른 심각한 사태로 이어지지는 않을지 심란하기만 하다.

 

이래저래 봄 같지 않은 봄. 사실 늦어진 개화시기, 어수선한 시국이 아니라도 벼농사 전업농인 나에게 봄은 아직 먼 얘기다.

 

아직 동안거.

문득 밖으로 나서보니

꿈결처럼 슬픈 봄이...

 

며칠 전 SNS에 울안의 나무에 매달린 꽃망울 사진을 올리면서 붙인 감회는 이랬다. 꿈결처럼 다가오는 봄이 슬픈 까닭은 농한기의 정적을 깨드리는 침입자로 보이기 때문이다. 가을걷이를 마치고 농가가 모두 끝난 겨울은 농부에게 더없이 아늑한 시간이다. 마치 세간을 떠나 출가한 사문이 문을 닫아걸고 도를 닦는 동안거 같은 것이다. 붙든 화두는 뚫릴 기미가 보이지 않고 깨달음은 아직 멀기만 한데 겨울이 저물고 이제 선방의 문을 열어야 하니 오는 봄이 어찌 야속하지 않겠는가 말이다.

 

현실의 농부라 해도 마찬가지다. 겨우내 빈둥대느라 몸과 마음은 풀어질 대로 풀어져 있는데 어느 날 문득 이제 다시 농사일 준비할 시간이야!” 일깨우는 자가 나타난 셈 아닌가. 그러니 다가오는 봄이 밀려드는 적군으로 보일 건 당연하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거스를 수 없는 게 자연의 섭리인 것을. 한동안은 야속한 세월을 탓하다가 시나브로 익숙해지겠지. 그리고 축 늘어진 심신을 추슬러 농사를 시작할 것이다.

 

남쪽으로 난 창문을 통해 따사로운 봄햇살이 들이 쬐니 완연한 봄임을 알겠다. 머잖아 울안에는 매화 산수화 명자꽃 개나리 벚꽃... 눈부신 꽃잔치가 벌어질 것이다. 농부는 그 꽃기운을 받아 농한기의 눅눅한 그림자를 떨쳐내고 들녘으로 나서겠지.

그렇지 않아도 이곳 저곳 공공기관들도 영농준비를 위한 업무를 개시했다. 고산권벼농사두레도 엊그제 정기총회를 열고 올해 사업계획을 마련했다. 지난 6년 동안 대표를 맡아 수고했다며 감사패를 주던데 그걸 받는 심경이 좀 복잡했다. 올해부터 벼두레 활동에 적잖은 환경변화가 따르게 되는데 모든 일이 잘 풀리기를.

 

주문 받은 쌀 택배를 보내러 읍내에 다녀오는 길, 차창 넘어 불어오는 바람이 한결 부드러워졌다. 그래, 어차피 봄은 오게 돼 있다. 월간 <완두콩> 2025년 3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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