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절로 그런' 날들

2025. 2. 10. 14:35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이번 겨울은 눈이 참 많이도 내린다. 자주 내리기도 하거니와 그때마다 펑펑 쏟아져 설국을 만들어 놓는다. 발코니의 네모난 철제 테이블 위에는 어마어마한 백설기가 얹혀 있고, 그 너머로 펼쳐진 앞산 자락은 단색 수묵화를 담은 거대한 병풍으로 돌변한다.

 

지난 설 연휴에 내린 눈은 고산 땅에 살면서 처음 겪은 큰 눈이었다. 차도로 통하는 진입로에 엄청난 눈이 쌓여 꼼짝없이 갇히고 말았다. 눈이 그치지 않으니 치워봤자 소용이 없는 상황. 늦게서야 이웃 네댓이 달라붙어 두 어 시간 치우고서야 겨우 길이 뚫렸다. 기상용어로는 폭설이다. 그 폭설에 여기저기 폭삭 주저앉은 비닐하우스에 견주면 제설작업이란 사실 얘깃거리도 못 되는 일이다.

 

그리고 엊그제 또 눈이 제법 내렸다. 학습효과라고 할까, 이번엔 차를 미리 도로변에 주차해두어 갇히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움직이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조금 전 뒷산에 다녀오는 길이다. 오르막과 능선 쪽으로는 아직도 발이 푹푹 빠질 만큼 제법 쌓여 있다. 아무도 지나지 않은 하얀 오솔길에 첫 발자국을 내는 그 쾌감을 혹시 아시려나? 눈을 내리깔고 흰 누리를 거닐다 보면 이내 사념의 세계에 빠져들게 마련이다. 세간사에 머무는 게 보통이지만 가끔은 출세간의 삼매에 빠져들기도 한다. 닿을 듯, 말 듯 궁극의 경지. 문득 눈 속에 파묻혀 가부좌를 튼 늙은 스님이 붙든 화두는 어찌 되었을까 궁금해진다.

 

산마루에서 굽어보는 들녘은 온통 은세계다. 가물가물 눈에 들어오는 가옥, 아파트, 가게, 시설물... 하지만 저 눈 속에서도 세상사는 그대로 이어질 테다. 사람들은 늘 해오던 대로 일상을 바삐 꾸려가겠지. 문득 그 삶이 등이 휠 것 같이무거울까 궁금해진다.

 

그래, 한창 농한기를 지나는 농부에게 지금은 그럴 때다. 큰 눈에 갇혀 옴짝달싹 못 하고 울안에 갇힌들 무슨 상관이랴. 밥벌이하러 나설 일도 없거니와 고립이란 외려 번다한 세상사와 거리를 두기에 더없이 좋은 핑계 아니던가. 서둘러 제설작업 하는 이웃들 틈에 끼어 마지 못해 넉가래 질을 하노라면 송글송글 땀이 맺힌다. 그 핑계로 대병 청주 뜨끈히 중탕해서 창밖으로 펼쳐진 설경을 안주 삼아 낮술 몇 잔 걸치는 맛은 또 어떻든가.

 

이리 뒹굴, 저리 빈둥 한없이 게을러져도 아무렇지 않은 시절이다. 눈이 녹아 길이 뚫린다 한들 딱히 나설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펼쳐 든다. 얼마 전 다녀온 근현대미술 전람회를 떠올리며 설연휴 내내 서양미술사를 다시 훑어본다든가, 고전읽기 모임에서 채택한 대장편 소설을 파고드는 식이다.

 

록음악의 역사를 다룬 책을 읽다가 사이키델릭 밴드를 다룬 뮤지컬영화를 30년 만에 재상영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느닷없이 번개를 쳤는데 다행히 세 명이나 붙었다. 전주 도심의 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밤이 이슥토록 감상평을 나누다 보니 테이블에 위에 빈 술병이 수북하다. 숙취 탓에 느지막이 눈을 떠도 그만이다. 며칠 뒤에는 고전소설 독후감을 나누기로 했는데 비슷한 상황이 펼쳐질 게 뻔하다.

 

농한기는 이렇듯 무척 겨르롭게 흘러가고 있다. 문득문득 이리 빈둥거려도 되나?’ 하는 불안감이 엄습하기도 한다. 물론 밥벌이 노동에 대한 무의식적 강박이 드러나는 현상일 뿐이다. 그리고 이제 농한기가 차츰 끝나가는 현실이 조바심으로 나타났음이다. 그래도 내게는 농사를 쉬는 기간이 아직 두어 달이나 남아 있다. 행복하다. 월간 <완두콩> 2025년 2월호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