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7. 7. 19:26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누구에겐지 모르겠지만 미안하다. 지리산 뱀사골을 찾아 더위를 식히고 오는 길이다. 이 찜통더위가 누군들 힘겹지 않겠냐마는 오래전에 마련된 일이었다. 붓다의 가르침을 헤아리려 모인 도반들과 더불어 나선 길. ‘책거리’가 핑계가 되었다.
이른 아침 길을 떠났는데도 도착하는 순간 그곳은 벌써 이글거리고 있었다. 탐방로를 얼마 걷지도 못했는데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가던 길을 멈추고 계곡물에 한참 동안이나 발을 담그고 머물렀다. 역시 계곡물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발을 담그고 머잖아 땀이 식었다. 언제까지고 그 자리에 붙박이고 싶은 심정이라니.
에어컨이라는 파괴적 이기가 아니라도 이 무더위를 다스릴 수 있는 실낱같은 길이 있다는 것. 그것이 다름 아닌 자연 속에 있다는 사실에 일순 가슴이 먹먹하다. 하지만 그 자연은 멀기만 하다. 거기에 다가서려면 너무 많은 배기가스(온실가스)를 내뿜게 된다. 찰나의 괴로움을 덜기 위해 더 큰 고통의 업을 쌓는 셈이니 결국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러니 안타깝고도 미안해지는 것이다.
계곡을 뒤로 하고 근처에 자리 잡은 실상사를 찾았다. 그곳 전각에 가부좌를 튼 불상은 아무 말이 없다. 보광전 앞뜰에 서 있는 석등만이 자등명법등명(自燈明法燈明, 스스로를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라)의 가르침을 넌지시 일깨우는 듯하다. 그렇다. 자업자득이거늘 누굴 탓하고, 누구에게 길을 구하겠는가. 결국은 저 빛나는 물질문명을 자랑해 마지않는 인류 스스로 찾아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직 해답은 없고, 갈수록 상황은 나빠지고 있다. 아직 7월초인데 더워도 너무 덮다. 지난해는 7월 중하순이 되어서야 섭씨 30도를 넘어섰던 최고기온이 올해는 아예 6월말부터 이어지고 있다. 기상뉴스는 이런 현상을 두고 북태평양 고기압이니, 유라시아 폭염열차 따위의 용어를 빌어 설명하고 있다. 이상고온이 휩쓸고 있는 유럽이나 남미에 견주어 약과라고 하지만 아직일 뿐이라고 한다. 이미 그 예고편이 펼쳐지고 있는 만큼 역대 최악의 폭염을 피할 수 없을 모양이다. 그것이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는 기후변화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이제 모두가 알고 있다.
그 사실을 나는 절감한다. 지난해 이맘때 저수지 둑이 무너져 논배미에 물을 대지 못하는 바람에 수북이 올라온 김을 매느라 열흘 가까이 애를 먹어야 했다. 물론 무척 힘에 겨웠지만 무더워서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런데 올해 비슷한 상황이 펼쳐졌다면 그런 끔찍한 상황도 없었을 것이다. 김매기는 엄두도 못내고 그저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을 게 틀림없다. 이 찜통더위에 김매기란 도무지 될 법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여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은 것은 정말 천만다행이라 감지덕지하고 있는 중이다.
그렇지만 나로서는 이 기후위기를 놓고 이래저래 걱정을 쏟아내는 일 말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밀려드는 해일을 그저 바라보고 있을 수밖에 없는 극심한 무력감에 시달릴 뿐이다. 해마다 여름이 되면 뻔한 얘기를 되풀이 들먹이는 자신이 딱해지기도 한다. 그래도 어쩌겠는가.
더위를 식히는 오늘 소풍은 시원한 팥빙수와 아이스아메리카노로 마무리되었다. 다시 고산으로 돌아온 오후 6시. 차문을 열고 나오니 한증막 같은 열기가 후끈 다가온다. 월간 <완두콩> 2025년 7월호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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