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17. 10:36ㆍ누리에 말걸기/<농촌별곡>
4월하고도 중순을 지나고 있는데 요 며칠 날씨가 심상치 않다. 느닷없이 눈이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때아니게 태풍에 버금가는 강풍이 불어와 그야말로 평지풍파다. 그 바람에 꽃잎이 어지러이 난분분하는 거야 어쩔 수 없다 쳐도 기후가 길을 잃어버렸음을 생각하면 어쩔 수 없이 가슴이 먹먹해온다.
어쩌다 일시적으로 일어난 돌발현상이 아니라 기후 시스템이 바뀌었다는 것이 문제다. 지구 온난화가 북극의 온난화로 이어져 ‘북극 증폭 현상’을 불렀다는 것이다. 그 여파로 극지방의 차가운 공기가 남하하는 빈도가 크게 늘었다는 분석이다. 아울러 온난화로 수증기가 늘어나면서 강수현상이 더 격렬해지고, 4월에도 눈이 내리는 변칙적인 날씨가 나타난다는 얘기다.
그러고 보니 올해 봄꽃은 여느해 만큼 화사하지 않았던 듯싶다. 개화시기가 늦었을뿐더러 매달린 꽃송이도 성글어 보였다. 게다가 꽃잎은 왜 그리도 빨리 지는지. 벚꽃이 지는 가운데 아직도 노랗게 뭉개진 개나리, 빨갛게 타오르는 명자꽃, ‘은한이 상경인제’ 달빛 아래 하얗게 빛나는 배꽃. 그나마 한 가닥 춘정을 어루만지는 풍경이라고 할까. 뒷산 오솔길을 걷다가 눈에 띄는 두릅순을 따다가 살짝 데쳐 초장에 찍는 싱그러움은 봄날이 준 덤이다. 그렇게 봄은 오고 또 가는 것이겠지.
다행인 것은 시국이 ‘겨울공화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봄을 맞았다는 점이다. 비상계엄 선포에서 비롯된 ‘내란정국’은 그 우두머리의 파면으로 일단락됐다. 아직 사법처리 절차가 남아 있지만 역시 사필귀정이요, 정말 다행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쨌거나 8년 전의 역사가 되풀이되는 듯 세상은 온통 대선정국으로 빨려들고 있는 모양새다. 정치의 기본틀을 바꾸지 않으면 이번에 보았듯 민주주의는 언제라도 위기를 맞을 수밖에 없는데도 정치판은 권력이라는 젯밥에만 온통 넋이 나가 있다. 아무리 그게 현실정치라지만 이러다가 우리 세계는 머잖아 ‘희망’이라는 것을 잃어버릴 지도 모를 일이다.
하긴 땅이나 파 먹고 사는 주제에 기후변화니, 체제전환이니 거창한 얘기 주어섬겨봐야 뭐하나 싶기도 하다. 안 그래도 농사철이 코앞에 다가왔다. 지금 고담준론이나 늘어놓고 있을 처지가 아니란 얘기다. 마지막까지 미련을 두었던 농한기도 이젠 정말 안녕이다.
엊그제는 고산권벼농사두레 경작자회의가 열렸다. 농사를 시작하기에 앞서 올해 바뀐 환경을 따져보고 두레작업 일정을 짜는 자리다. 앞으로 한 달 남짓 볍씨 담그기와 촉 틔우기, 볍씨 파종작업, 못자리 만들기, 모판 나르기 같은 두레작업이 펼쳐지게 된다. 회의에서는 작업공정을 자세히 점검하고, 준비사항과 개인별 작업지침을 확인했다. 올해도 새롭게 유기농 벼농사에 합류하는 회원들이 제법 되는 편이다. 늘 그렇듯이 경력이 오랜 이들은 덤덤하게 상황을 설명하고 의견을 내놓는다. 반면 새내기들은 높은 기대감 속에 그야말로 초보적 질문을 쏟아내며 눈빛을 반짝이게 마련이다.
벼농사두레의 공동경작은 그 역사가 어느덧 10년을 넘어서고 있다. 일을 앞에 두고는 늘 태산 같은 걱정에 짓눌리는 법이다. 그래도 일단 시작되면 언제 그랬냐 싶게 술술 일이 풀려나가게 돼 있다. 이따금 생각지도 못한 사고가 터지기도 하지만 수습하고 나면 그뿐이다. 사람들은 다시 하하호호 가던 길을 재촉한다.
올해 벼농사도 이렇게 막이 올랐다. 세월이 무심치 않다면 우리는 이번에도 어김없이 ‘노동과 놀이, 노동과 잔치의 경계를 허물어버리는’ 신명나는 벼농사를 짓게 될 것이다. 월간 <완두콩> 2025년 4월호 칼럼
'누리에 말걸기 > <농촌별곡>'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보다 농사? (0) | 2025.05.13 |
---|---|
오는 봄이 슬픈 까닭은 (0) | 2025.03.12 |
'저절로 그런' 날들 (1) | 2025.02.10 |
길 끝에 또 길이 있다 (0) | 2025.01.15 |
대통령제, 그만 둘 때도 되었다 (2) | 2024.12.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