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박물관의 재구성② 가실 분만 보시오

2007. 5. 19. 20:12발길 머무는 땅/중앙박물관 재구성

관람하러 가실 분만 읽으시오

중앙박물관의 재구성②


웅장하면서도 날렵한 느낌의 중앙박물관은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뉜다. 극장, 도서관, 식당, 기획전시실 등으로 이루어진 서관이 그 하나고, 전시공간이 들어선 동관이 나머지 구역이다. 전체로는 한 건물인데 동-서관 사이의 지붕 밑 약 30여 미터는 뻥 뚫려 있다. 박물관 구내로 들어서면 뚫린 사이로 저만치 남산이 건너다보인다. '박물관 경내에 남산을 끌어들였다'는 찬사를 받는 바로 그 건물배치다. 실제로 송신탑이 솟은 남산이 빈 공간에 자리 잡은 모습은 관람객의 눈맛을 즐겁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웅장-날렵한 건물에^^ 그물 걸린 남산에@@


거기까진 아무리 칭찬해도 모자람이 있다. 그런데 몇 걸음 발길을 옮기다보면 이내 짜증이 솟는다. 울긋불긋 곱게 물든 남산의 가을풍경을 골프연습장이 볼썽사납게 가로막고 있는 탓이다. 정말이지 ‘이렇게까지 골프를 쳐야 하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든다. 하지만 거기에만 매달리다 보면 기분을 잡치게 마련. 나중에 이놈을 철거하든 하고 일단은 불쾌감을 깨끗이 잊고서 오른쪽으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중앙박물관 동관과 서관 사이의 '열린마당' 너머로 보이는 남산의 시원한 모습이 골프연습장에 가려 처참하게 찢겨 있다. 만인을 위하여 이 골프장을 철거하는 건 어떨까.


이미 얘기했듯 전시관은 3층으로 돼 있고, 각층은 두 공간으로 나뉜다. 전시공간은 모두 6곳인 셈이다. 1층 고고관과 역사관, 2층 미술관1과 기증관, 3층 미술관2와 아시아관이 그것. 그런데 별 생각 없이 1층-2층-3층 차례로 둘러보면 자칫 흐름을 놓치기 쉽다. 박물관에서 나눠주는 한 장짜리 리플릿에는 관람순서를 안내하고 있는데 이걸 눈여겨보는 게 좋다. 물론 '감상'이라는 측면을 최소화해 전부를 둘러보는 데만도 11시간이 걸린다는 게 박물관쪽의 설명이고 보면 하루에 다 보겠다는 건 지나친 욕심이다. 적어도 이틀은 투자하겠다는 생각으로 가는 게 좋다. 아무튼 박물관쪽이 제시하는 관람순서는 고고관->역사관->미술관1(2층)->미술관2(3층)->아시아관(3층)->기증관(2층) 차례다. 전문가들이 오죽 잘 안내했을까마는 역사관을 미술관 다음에 들러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관람시간? 이틀은 투자하시라


물론 미술관2까지의 4곳이 본류다. 아시안관은 규모로 보나 전시유물로 보나 그 나라의 정수를 모아놨다고 보기 어렵고, 기증관은 대부분의 유물이 겹친다고 봐서 틀림없다. 그렇다고 일부러 외면할 필요까지는 없다. 그곳에서도 건질 게 적지 않다. 다만 시간 배정할 때 고려하라는 정도다.


유물과 작품의 전시는 서예, 회화, 금속공예, 불교조각 등의 주제별로 전시관을 꾸리고 각 전시관은 연대순으로 배치한 게 보통이다. 인쇄관의 경우 신라 다라니경-> 고려 직지심경 -> 조선 각종활자 순서로 배치하는 식이다. 단 하나 예외가 있는데 바로 고고관이다. 이 곳은 역사의 흐름에 따라 구석기-신석기-청동기-초기철기-원삼국-고구려-백제-가야-신라-통일신라-발해 차례로 돼 있다. 왜 고고관이란 이름을 붙였는지 정확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문자를 배제한 유물만으로 전시관이 구성된 까닭인 모양이다.


고고관 입구에 들어서면 이 전시관을 대표하는 유물 네 점이 진열돼 있는데 빗살무늬토기, 청동검, 백제 산수무늬벽돌, 신라 금제귀고리가 그것이다. 이 전시관의 성격을 집약해 보여준다 할 것이다. 그런데 고고관은 초입부터 사람을 바짝 긴장시킨다. 그저 ‘맛뵈기’려니 지나칠 수 있지만 그게 아니다. 입구에 무덤덤하게 들어서는 관람객의 ‘군기’를 확 잡기 위한 박물관쪽의 의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나중에야 들었다. 들었다.

 

           화려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신라시대 금제귀걸이


고고관 입구에서는 긴장하시고


맨 처음 만나게 되는 빗살무늬토기. 신석기인들이 만들었으면 얼마나 잘 만들었을까 생각하면 큰코다친다. 그 현란한 무늬를 보는 순간 아마도 가슴이 싸 해질 것이다. 사실 안쪽에 전시된 토기 중에는 이런 '명품'을 찾기 힘들다. 두 번째 전시된 세형동검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각종 토기류나 청동기는 지방 어느 박물관에 가더라도 전시돼 있고, 많이 익숙한 탓이기도 할 것이다. 세 번째 산수문전. 요즘으로 치면 보도블록에 해당하는 유물이다. 백제시대 궁궐이나 절집 마당, 회랑에 깔았던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무늬며 질감이 눈을 번쩍 뜨이게 한다. 이 점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한 번 살펴볼 기회가 있을 것이다. 네 번째가 신라 금제귀고린데 만약 우리말에 최상급 표현이 있다면 '화려하다'의 그것으로 손상이 없다. 이 역시 전시관에서는 볼 수 없는 유물이 아닐까 싶다. 물론 전시된 금제 귀고리는 무척 많다. 하지만 다른 귀고리를 보고 난 다음에는 반드시 이 귀고리를 다시 보고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