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25. 20:54ㆍ발길 머무는 땅/중앙박물관 재구성
부여에 가 봤시유?
슬픈 백제의 역사는 중앙박물관 고고관의 유물로 남아있다. 고고관은 구석기-신석기- 청동기·초기철기-원삼국-고구려를 지나면 백제관이다. 그런데 지금까지 전해지는 백제의 유물은 그리 많지가 않다. 완숙의 경지에 이르렀던 백제의 장인들은 신라에 동원돼 화려한 통일신화 문화를 꽃피우는 원동력이 됐을 것이다. 안압지, 불국사, 석굴암… 그것의 원류가 백제라 추정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백제관은 부여박물관의 축소판
이미 얘기했듯 나는 백제문화권의 후예다. 국민학교 시절 수학여행이랍시고 부여엘 다녀왔고, 지금도 여름휴가를 맞아 내려가는 곳은 바로 징하게 무논만 펼쳐진 익산의 벌판이다. 우리민족의 주거관은 '배산임수'여서 이런 평야지대에 사람이 꼬이기 시작한 건 그리 오랜 일이 아니다. 그래서 익산은 역사에 등장하지 않는다.
▲ 낙화암
▲ 부소산성
▲ 능산리 고분군
왜 안 그렇겠는가. 그곳엔 논 갈아 쌀을 만들어내는 농투산이들이 자리를 잡았을 터이고, 공자왈 맹자왈 음풍농월하던 귀족들하고는 인연이 없던 곳이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번듯한 유적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런 곳을 가보자면 자동차로 한 시간 넘게 달려야 한다. 그나마 만만한 곳이 바로 부여다. 그런데 창경원 옆에 사는 사람이 그 곳을 찾지 않듯 나 역시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기억이 어슴프레 하지만 지난핸지 그러께인지에도 그곳엘 갔었다. 그 때는 낙화암, 군창터로 상징되는 부소산성과 능산리 고분군을 둘러봤다. 올해는 벼르고 벼르던 부여박물관을 찾았다.
사실 중앙박물관 백제관은 부여박물관의 축소판이다. 부여박물관에 가면 훨씬 생생하게 백제를 느낄 수 있다. 무기류가 전시돼 있는데 게 중에는 물고기 꼬리지느러미를 닮은 창도 있다. 중앙박물관에는 그 용도가 뭔지 아무 설명도 없지만 부여박물관에는 '적의 목을 밀어서 베는 무기'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그러니 백제문화를 제대로 느끼려거든 부여박물관을 둘러보시라.
유물 유적의 ‘질감’에 대하여
중앙박물관 고고관을 다루면서 입구에 전시된 산수문전을 건너 뛴 바 있다. 이제 그 얘기를 좀 해보자. 전돌에 새겨진 문양은 동아시아 한중일 삼국에서도 백제에만 독특하게 나타나는 것이라고 한다. 국사 교과서에도 사진으로 나와 있고, 이런저런 책에서도 그 도판이 소개되고 있다. 그런데 실물을 꼭 보시라. 사진으로는 그 섬세한 질감을 느낄 수 없기 때문이다. 별것 아닐 것 같은 벽돌 한 장이 어찌 하여 '국보' 대접을 받는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질감 하면 떠오르는 게 또 하나 있다. 바로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다. 부여읍내에 있고, 잘 알다시피 국보 무려 5호다. 이 역시 사진으로, 도판으로 많이 소개돼 있고 사실 별 감흥을 주지 못한다. 그러나 실물을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문제는 질감이다. 사진은 핵심적인 감동의 요소까지는 보여주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 부여박물관
▲ 백제 산수문전
▲ 정림사지 5층석탑
이 정도로 각설하고. 올해는 맘먹고 찾은 부여인지라 식구들의 타박에도 꿋꿋이 버티며 내친김에 궁남지까지 찾았다. 사비시대 궁궐에 딸린 연못인데 1번국도(?)를 타고 가다보면 궁남지를 발치로 볼 수 있다. 지름 1백미터 남짓한 연못 둘레에 버드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나무다리로 연결된 자그마한 섬 위에 누각 하나 서 있는, 사실 보잘 것 없는 연못이다. 다리를 건너 섬으로 갔는데 누각에 편액이 걸려 있었다. 누각이름은 생각이 안 나는데 그것을 쓴 사람만큼은 생생하다. '국무총리 김종필'. 쓴웃음을 지었던 기억이 난다.
사실 이 보잘 것 없는 궁남지가 온갖 찬사를 받고 있는 경주 안압지의 원류라는 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은 듯하다. 뿐만이 아니다. 궁남지 조경기술이 일본에 건너가 아기자기한 일본 조경의 원류가 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 궁남지
▲ 궁남지 연꽃
▲ 소쇄원
그런데 중국이나 일본의 정원과 비교해 우리의 정원(우리식 표현은 ‘원림’이라고 한다)은 자연친화가 특징이다. 지난 여름에는 소쇄원엘 다녀왔는데, 잘 알다시피 소쇄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원림으로 평가되고 있다. 솔직히 그 명성만큼의 아름다움을 느끼지 못해 그걸 찾아보려 오랜 시간 머물다가 "뭐 볼 것 있다고 이 더위에 여기까지 끌고 와서는, 사람들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느냐"는 식구들의 노기 띤 푸념에 혼쭐났던 기억이 새롭다.
자연에 최소한의 인공을 더하는 조형의식
서양 조각을 대표하는 로댕도 그랬다고 하지만 우리민족의 조형의식은 유난히 자연친화적 인 듯하다. 오래 전에 경주 남산을 둘러볼 기회가 있었는데, 우연히 한 답사팀과 동행을 하게 됐다. 그 팀의 안내자 얘기는 시종 "신라조각의 특징은 자연에 최소한의 인공을 더하는 것"이라는 거였다. 그러고 보니 바위면에 새겨진 관음보살 부조상도 좀 엉성했지만 튀지 않는 소박한 아름다움을 느꼈던 기억이 난다.
궁남지도 그렇다. 보잘 것 없는 연못이라도 줄지어 선 버드나무의 축축 늘어진 가지, 참매미의 정겨운 울음이 여름의 정취를 물씬 풍기고 있었다. 뭐랄까. 황성옛터의 퇴락한 아름다움이랄까. 그나마 그 허전함을 메워주는 존재가 있었으니, 연못을 애워싸고 드넓게 펼쳐진 연꽃밭이 그것이다. 한쪽에서는 연분홍 꽃대를 올리고, 바로 옆에서는 벌집 같은 연밥이 익어 가며, 넓적한 연잎이 대평원을 이루는… '장관'이라는 말로도 다 표현하기 힘든 숨 막히는 아름다운 정경. 물밑으로는 얼마 전까지 벼를 키웠던 기름진 땅이 연뿌리를 살지울 것이다.
하이고~ 오늘은 여기까지. 아무튼 여름이 다시 오거든 그 곳에 꼭 한번 가보시라.
'발길 머무는 땅 > 중앙박물관 재구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중앙박물관의 재구성 ⑦ 아! 백제금동대향로 (0) | 2007.05.27 |
---|---|
중앙박물관의 재구성 ⑤ 슬픈 백제 <2> (0) | 2007.05.25 |
중앙박물관의 재구성 ④ 슬픈 백제 <1> (0) | 2007.05.25 |
중앙박물관의 재구성 ③ 문외한의 미술관 감상법 (0) | 2007.05.24 |
중앙박물관의 재구성② 가실 분만 보시오 (0) | 2007.05.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