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5. 24. 00:54ㆍ발길 머무는 땅/중앙박물관 재구성
어디서 본 듯한 불상의 얼굴들
우리가 미술관에 가는 이유는 뭘까? 물론 작품 감상이 목적일 터이다. 하지만 말이 쉬워 미술이지 그게 어디 단순한가. 전통적 장르만 하더라도 그림, 조각, 서예, 공예가 꼽힌다. 잘은 모르겠지만 시대에 따라 이런 갈래로 나눌 수 없는 미술양식이 생겨났다가는 사라졌을 법하다.
중앙박물관에는 미술관이 Ⅰ관, Ⅱ관으로 나뉘어 있다. 우리 유물에서 미술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높다는 반증일 터이다. 당시에는 딱히 예술적 동기가 아니라 생활이나 종교적 필요에 따라 빚고 그리고 만든 게 대부분이겠지만 오랜 세월의 더깨가 그것을 예술품으로 추어올린 것이렷다. 그러니 전체 전시공간의 1/3 이상이 미술품으로 채워진 것 아니겠나.
사람을 주눅들게 하는 ‘예술’
그런데 사람들은 예술, 특히 미술이란 것 앞에만 서면 일단 주눅이 든다. 자고로 예술이란 ‘감동’을 본질적 요소로 하는 것인데 이 감동이란 놈이 몹시도 이물스럽기 때문이리라. 물론 예술을 통해 맛보는 감동은 사람관계에서, 삶 속에서 느끼는 것하고는 적잖이 다른 구석이 있다. 그것을 확실히 표현해낼 수 없는 갑갑함이 주눅듦의 원천이지 싶다. 실상은 ‘저것이 예술이라는데 도통 뭐가 아름다운 것인지 모르겠다’는 것이 가장 흔한 갑갑함이 아닐까.
▲ 세한도(추사 김정희)
중앙박물관을 ‘재구성’ 한답시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사람도 그 점에서 ‘무식’하긴 마찬가지다. 동서양의 이런저런 미술품의 예술적 가치를 설명한 책들을 읽어보면 ‘아하~’ 하지만 뭐 그 때 뿐이다. 회화관에서 만난 김정희의 ‘세한도’를 보면서 느낀 좌절감도 그런 종류의 것이다. 썰렁한 집 한 채와 소나무 잣나무 네 그루가 전부인 이 그림은 ‘조선 문인화의 최고걸작’이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10미터는 족히 돼 보이는 두루마리에 당대 청나라 문사 16명의 찬, 오세창·정인보·이시영 등 낯익은 인사들의 시문이 곁들여 있어 그 가치를 짐작케 한다. 하지만 그에 걸맞는 감동이 내게는 몰아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좌절할 밖에.
아무튼 사설은 그만 때려치우고. 요컨대 ‘내 식대로 감상하자’는 ‘무대뽀 정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지 않겠나. 작품에 얽힌 시대적 배경이나 사연, 감상 포인트 따위는 감식안을 가진 전문가들에게 구하면 될 것이고. 그럼 ‘무슨 재미로’ 미술품을 구경한담. 여튼 박물관에 들어서서 머리 싸매고 그걸 고민하고 있을 틈은 없는 일이다.
석굴암 본존불 때문에 눈맛을 버리고
어찌하다 보니 미술작품 관람을 3층의 2관부터 시작하게 됐다. 불교조각, 금속공예, 도자기 등 조형미술품이 전시된 곳이다. 이 전시관의 백미는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 찜쪄먹는다는 신라의 금동반가사유상이다. 전시관 초입에부터 여러 종류의 불상이 전시돼 있다. 석불과 철불, 금동물이 그야말로 ‘지천으로’ 널려 있다. 우리나라 불상을 대표하는 건 뭐니뭐니해도 토함산 석굴암의 본존불이다. 그 신비한 ‘신라의 미소’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될 만큼 보편적 감동을 얻은 셈이다. 그 모습을 사진으로 숱하게 보고, 실물도 두 어 차례 ‘친견’한 마당이니 다른 불상이 눈에 들어올 리 있겠는가.
그런데 그 불상들을 하나 둘 둘러보면서 강한 느낌이 왔는데 다름 아닌 표정이었다. 형태야 입상이나 좌상 중 하나고, 세부양식이라 해봤자 그 종류가 열 손가락 정도로 규격화돼있으니 그것만 보면 사실 ‘천편일률’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헌데 표정만큼은 가지각색이다. 또 하나 감상의 흥을 돋운 것은 이따금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을 만나게 되더라는 것이다.
불상은 신이 아닌 당대의 사람(장인)이 만든 것이다. 창작을 하려면 당연히 모델이 필요하겠다. 상식적 얘기지만 당시에 사진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불교계에 부처의 진영이 존재할 리 만무하다. 그러니 인도나 동남아시아 불상의 모습이 다르고, 같은 동아시아라 해도 중국과 일본, 한반도의 그것에 커다란 차이가 난다. 당연히 그 시대, 그 나라 사람의 얼굴이 묘사되게 마련이다.
낯익은 얼굴을 찾아서
서양회화를 보더라도 종교화나 신화를 소재로 한 그림 등에 묘사된 얼굴은 당대의 실존인물이 그대로 그려지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화가 자신의 얼굴을 끼워 넣는 경우도 있었다. 동양이라도 별반 다르겠나 싶다. 당연히 장인과 동시대를 살아간 이웃이나 불상을 공양한 재력가의 얼굴이 담겼을 가능성이 없지 않다. 또한 불상에 담긴 옛 사람과 오늘의 우리가 유전자를 공유하고 있으니 거기에서 현대 한국사람의 얼굴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쇠귀불. 국립중앙박물관 불교조각관에 전시된 고려시대 철불불두. 보는 순간 누굴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신영복 선생을 빼닮았다.
애마보살(?). 고려시대(14세기) 금동 관음보살상이 묘한 자태를 보이고 있어 이채롭다. 전시관에서 이런 포즈를 취한 불상은 이 관음보살상이 유일한데, 이 포즈 자체는 파격은 아니라고 한다.
무현불(?). 무표정한 얼굴을 한 이 돌부처. 경주 남산에서 옮겨온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이라고. 이 돌부처는 개구리의 그것처럼 유난히 툭 불거져나온 눈두덩이 눈길을 끈다.
서산 보원사 터 철불. 웃는 듯, 우는 듯, 찡그린 듯... 묘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 철불의 이름
을 무어라고 붙여줄까?
통일신라 시대에 제작된 약사불.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는 친숙한 얼굴을 하고 있다.
하여 나의 불상 감상은 ‘저 불상은 누구와 닮았는지’를 찾는 것이 주요관심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얼굴의 주인공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맨 처음 눈에 들어온 것은 불두만 얹어놓은 철불이었는데 나는 그 불상에 '쇠귀불'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잘 알다시피 '쇠귀'는 동양철학자 신영복 선생의 호다. 정말 닮았는지는 저마다 알아서 판단하면 그만이다. 그밖에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불상의 얼굴을 사진에 담았는데 저마다 거기에 이름을 붙여보는 재미도 쏠쏠할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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