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데이가 예서는 '면민의 날'

2012. 5. 7. 09:40여름지이 또는 신선놀이/시골에 산다

5월1일, 메이데이.

놀러 내려오마던 녀석들은 일이 덜 끝나 다음에 오마고 전화를 날렸다.

맘잡고 밀린 숙제나 해치울까 생각하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부터 전화통이 울린다.

"어쩌죠. 이장님 '특명'이라 지금 나오셔야 쓰겄네요..."

읍내 잔디구장에서 운영씨가 급전을 띄워온다.

어제만 해도 점심시간 즈음에 나왔다가 눈도장 찍고 점심먹고 나서 들어가면 될거라 했는데...

사정이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랬을까 싶어 차비를 서둘렀다. 

현장에 도착하니 '특명'이 내려질 만도 했다.

운동장에 마을(리) 단위로 도열했는데 어우리가 제일 줄이 짧다.

그래도 전체인원은 천명을 헤아렸다.

면인구가 5천인데 학생과 아이들을 빼면 면민의 1/3정도가 참석한 셈 아닌가!

뒷켠으로 다가가니 어르신 한분과 얘기를 나누던 이장, 반갑게 맞아준다.

"나와 줬구만. 고마우이"

"뭐, 당연히 나와봐야죠.ㅎㅎㅎ"

 

햇빛은 점점 더워지는데, 국민의례는 국기에 대한 경례, 애국가제창,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
빠뜨리지 않고 죄다 꿰찬다.

"쫌 있다가 운영씨 상 받으면 꽃다발 저기 있으니까 좀 전해줘~"

그런데 무슨 상이냐고? '다자녀상'이란다.

아마도 어우리에 그 상이 배정됐는데 적임자를 찾다보니

아이 셋밖에 안되는 운영씨가 낙점을 받은 것. 

"애기엄마한테 얘기했더니, 자기는 챙피해서 못가니 나 혼자서 받으라고 하더만요.ㅎㅎㅎ"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다자녀상'이 뭐여~ 세상에.

 

그건 그렇고...

시상식이 끝나고 나서 일장연설이 시작되는디! 방귀깨나 뀌는 인사들이 빠지지 않고 연단에 선다.

면장님으로부터 시작혀서

이곳 면출신 군의원의 군민의 날 내력보고. 6.25전쟁 당시 인민군 수중에 떨어진 면을 수복한 것이 5월1일이라는데 그날을 기려 면민의 날로 선포했단다. 뭐, 36년전 얘기니 그럴수도 있었겠지.

일장연설은 군수, 지역출신 국회의원, 군의회 의장으로 이어지다가 도의회 무슨 위원장에서 끝났다.

이제, 면 체육회장의 체육대회 선언과 선수대표 선서로 기념식을 막을 내렸다.

곧바로 체육대회가 시작됐다.

계주,줄넘기, 줄다리기,고리걸기, 배구, 윷놀이, 투호, 공굴리기 따위가 진행됐다.

어떨결에 줄다리기 선수로 출전했다.

3판2선승제 였는데, 첫번째 경기에서는  가볍게 2:0으로 승리.

대진표 덕에 그 다음이 바로 결승이다.

첫판에서는 패. 자리를 바꾼 둘째판에선 승. 마지막 세번째 판, 가위바위보로 자리를 정했는데 다행히 좋은 자리를 점했다. 승리는 이제 떼어놓은 당상. 실제로도 일진일퇴 끝에 이겼다. 그런데 아뿔사...

손에 땀을 쥐며 경기를 지켜보던 동네 할머니 한 분이 안타까운 마음에 동아줄에 손을 대고 말았고, 용케 그 장면을 지켜본 상대팀 이장이 두팔로 가위표를 그리며 "반칙!"을 외쳤다. 

심판진이 그 할머니를 불러 "줄에 손 댔어요?" "예, 쪼금" "사는 동네가 어디예요?" "어우리요"

그걸로 끝이었다.

잠시후 심판이 나섰다. "뭐, 할머니가 경기에 영향을 미쳤겠습니까만 그래도 경기규칙에 따라 반칙패를 선언할 수밖에 없음을 양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여기저기서 낭패감을 표출하긴 했지만 항의사태를 벌어지지 않았다.

그 할머니만 이사람 저사람의 푸념을 들어야 했다.

나중에 보니 이 반칙패만 아니었어도 어우+율곡리가 종합우승이었는데 2위로 미끌어졌다. 

 

체육대회가 끝나고 나서는 이 고장 예술단의 공연과 노래자랑이 이어졌다.

어쩌면 그리들 스스럼없이 무대에 오르고 노래를 불러제끼는지...

무대 아래에선 신나는 곡조가 울릴 때마다 커다란 춤판이 벌어지고...

한판 축제라 하기에 모자람이 없어 보인다.

신나게 노는 데는 그야말로 남녀노소가 따로 없다. 술기운이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그런데, 끝까지 자리를 뜨지 않도록 만든 힘은?

아, 그것은 다름아닌 '경품추첨'!

냉장고를 최고가 경품으로 갖가지 생활용품을 내걸었다.

사회자의 익살이 간간이 웃음을 이끌어내고 하나하나 주인을 찾아간다.

경품추첨이 끝나자 인파는 썰물이 되어 빠져나간다.

이어진 체육대회 시상식은 어수선한 파장분위기에서 진행됐다.

면민의 날이 그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이 느낌은 뭔가.

놀랍기도 하고, 고루하기도 하고,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 특별한 경험.

그것이 이 고장 사람들의 삶에 어떤 활력을 불어넣었을까...